본문 바로가기

農/메밀이야기

아리랑 가락 타는 메밀 콧등국수

 아리랑 가락 타는 콧등국수

                                                                 

                                                                  우은숙(장안대학 문예창작과 강사)

  ‘정선’하고 불러보면 언제나 싸하게 가슴을 휘돌고 가는 추억들이 하나·둘 부풀어져 커다란 풍선이 되곤 한다. 그곳이 나의 탯줄을 묻은 곳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곳에서 뛰고 놀았던 기억들이 앨범처럼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어렸을 때는 사람들에게 ‘정선’에 산다고 하면 “정선! 정선이 어디 있는데?”라며 반문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선을 모르는 사람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이다. 정선아리랑과 함께 아우라지가 유명해지면서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정선 5일장 열차가 정선을 알리는데 한 몫을 톡톡히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때도 지금처럼 정선에는 5일장이 열렸다. 끝자리가 2일과 7일에 열리는 5일장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날이었다. 장날이면 으레 엄마는 장을 보러 가셨다. 엄마를 따라간 시장에는 먹거리가 즐비하여 보기만 하여도 입이 벌름벌름 헤벌어지는 것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그 행복의 징표로 얻게 되는 것은 지금 아이들은 잘 먹지도 않는 손바닥만한 엿 한 조각이었다. 동그란 모양에 땅콩이 듬성듬성 박혀 있어 울퉁불퉁한 이 엿은 장날 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이것저것 장을 본 다음 꼭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은 국수를 파는 곳이다. 국수 파는 곳이라 하면 당연히 가게를 떠올리게 되는데, 절대 가게가 아니다. 시장 한 모퉁이에서 서서 먹거나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먹는 국수였다. 이 국수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과 고향의 생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콧등치기 국수’인 것이다.

  지금도 정선의 인심을 대표하는 콧등치기국수는 수수전병과 함께 정선에서는 유명한 요리 중의 하나이다. 콧등치기국수의 면은 정선지역에서 나는 메밀로 만든다. 국수발이 손가락 굵기만큼 굵어, 면을 후루룩 들이켤 때면 국물 속에서 엉켜있던 굵은 면발이 스프링처럼 일어나면서 콧등을 탁! 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국수가닥이 정선아리랑의 가락처럼 휘, 휘 늘어져 있다가 먹는 이의 콧등을 잽싸게 후려치는 그 유머스러움이라니. 장난기 많은 개구쟁이의 얼굴이기도 하고, 세상을 똑바로 살라 하는 채찍이기도 하다.

  이 콧등치기 국수를 한 그릇 먹는 것은 정선을 먹는 것이며, 시골 인심을 먹는 것이다. 그것뿐이겠는가. 황기를 넣어 찐 황기백숙, 감자를 갈아 만든 감자옹심이, 옥수수 가루로 만든 올갱이 국수 등은 정선의 독특한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음식들이다. 또한 솥뚜껑을 뒤엎어 놓고 먹음직스럽게 부치는 수수노치(수수부침개)는 자기도 모르게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구수하면서도 친근한 콧등치기국수 파는 아줌마의 인심은 말만 잘하면 국수 한두 사리쯤은 덤으로 얹어주는 정겨움도 아직 남아 있다.

  평창의 작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에도 등장하는 5일장은 일상에 찌든 도시 사람들에게는 향수의 텃밭이 되었으며, 이곳 사람들에게는 효자 관광상품이 되었다. 이제 정선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 되었다. 물론 주변의 빼어난 풍광, 조양강과 비봉산, 그리고 그 옆의 영월 동강과 화암 8경 등이 가까이에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것은 어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장날에는 정선 일대에서 나는 각종 나물이며, 약초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 시골스러움을 즐기기 위해 사람들은 정선을 찾는다. 어쩌면 그들은 물건을 사러 그곳까지 오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정선에서 잃어버린 고향의 정취를 찾고, 자신의 잃어버린‘과거’, 어렴풋한 자신의 어릴적 ‘향수’등 그 이미지를 사러 오는 것이거나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네 삶의 넉넉했던 ‘인심’을 사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을 사러 오든 정선장은 항상 푸근히 그들을 맞는다. “자네…왔능가?” 하고 말이다.

  “좋은 물건 많응께, 그저 쉬엄쉬엄 보고 가시래요.”

  말끝을 묘하게 말아 올리는 다정스런 강원도 산골 사투리는 시골장터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시장 곳곳에 조각조각 퍼져있다.

  일상에서 일탈하고자 하는 의욕은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속에 항상 잔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정말 뜬금없이 청량리로 가보라. 그리고 대책 없이 정선으로 가보라. 그러면 돌아올 땐 시장에서 산 장터물건 외에 가슴 속 깊은 곳에 또 하나의 다른 무엇을 더 가져오게 될 터이니 말이다.

  정선장은 이렇게 잃어버린 고향의 향수들을 마지막까지 찾아 주려 오늘도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는 정선의 “힘”, 강원도의 “힘”이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자, 이제 우리 작은 배낭 하나 걸쳐 매고 망설일 것 없이, 정선의 인심인 ‘콧등치기 국수’ 먹으러 신발끈을 동여매자. 그리고 정선선 열차에 가뿐히 올라보자.


<정선의 별미 콧등치기국수 만들기>


재 료

메밀, 된장, 멸치, 감자, 호박, 마늘, 파


요리방법

① 메밀가루를 물을 붓고 적당히 반죽하여 국수를 만든다.

② 국물 만드는 방법은 다른 지방의 국수와 완전히 다르다. 멸치로 국물을 내고 된장을 풀어 된장국물을 만든다.

③ 감자, 호박 등은 껍질을 벗겨 썰어 놓는다.

④ 만들어 놓은 국물②에 ③을 넣어서 한소큼 끓이다가 김을 낸 후 ①을 넣고 끓인다.

⑤ 파와 마늘을 넣고 한번 더 푹 끓여 간하여 먹는다. 이렇게 끓이면 메밀과 된장국이 혼합된 콧등치기 국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