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我/농업속인물

농업 개혁가 토정 이지함

농업 개혁가 토정 이지함
 
'땅과 바다는 백가지 재용의 창고입니다. 이것은 형이하(形而下)의 것으로 이것에 의존하지 않고서 능히 국가를 다스린 사람은 없습니다. 진실로 이것을 개발한 즉 그 이익이 백성들에게 베풀어질 것이니 어찌 그 끝이 있겠습니까? 씨를 뿌리고 나무 심는 일은 진실로 백성을 살리는 근본입니다. 따라서 은은 가히 주조할 것이며, 옥은 채굴할 것이며, 고기는 잡을 것이며, 소금은 굽는데 이를 것입니다. 사적인 경영으로 이익을 좋아하고 남는 것을 탐내고 후한 것에 인색함은 비록 소인들이 유혹하는 바이고 군자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지만 마땅히 취할 것은 취하여 백성들을 구제하는 것 또한 성인이 권도(權道)로 할 일입니다.'(토정유고 '리포천현감시상소(抱川縣監時上疏')
 
 

 본관 한산(韓山). 자 형백(馨伯)·형중(馨仲). 호 수산(水山)·토정(土亭). 시호 문강(文康). 《토정비결(土亭 訣)》의 저자이다.
생애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내 토정이라는 호가 붙었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후손으로, 현령 이치(李穉)의 아들이며, 북인의 영수 이산해(李山海)의 숙부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이지번(李之蕃)에게서 글을 배우다 서경덕(徐敬德)의 문하에 들어갔다. 경사자전(經史子傳)에 통달하였고, 서경덕의 영향을 받아 역학·의학·수학·천문·지리에도 해박하였다. 1573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6품직을 제수받아 포천 현감이 되었으나 다음 해 사직하였다. 1578년 아산현감이 되어서는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관내 걸인의 수용과 노약자의 구호에 힘쓰는 등 민생문제의 해결에 큰 관심을 가졌다.

 

 

개혁을 꿈꾸다! 토정 이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