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거울 같았던 벼루… 조국애를 갈고 또 갈아
安의사 위패 모신 大林寺에 日 수집가가 보관하다 기증 사이토 주지 “한국반환 검토”
“조선의 선비에게 벼루란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이었다. 31년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는 청춘의 통곡과 끝없는 조국애를 담아 먹을 갈고 또 갈았을 것이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처형되기 직전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벼루가 일본에서 발견됐다.
안 의사의 위패를 보관하고 있는 미야기(宮城) 현 구리하라(栗原) 시 다이린(大林)사의 사이토 다이켄(齋藤泰彦·73) 주지는 6일 “일본인 수집가로부터 안 의사 최후의 유품으로 보이는 벼루를 기증받아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다이린사가 공개한 벼루는 가로 7.5cm, 세로 13.3cm, 높이 1cm 크기로 뒷면에 ‘경술삼월 어여순옥 안중근(庚戌三月 於旅順獄 安重根·경술년 3월 뤼순감옥에서 안중근이라는 뜻)’이라고 새겨져 있다. 다이린사는 ‘복수해(福壽海)’라는 글자가 새겨진 벼루 뚜껑과 안 의사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먹도 함께 공개했다.
사이토 주지는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에게 모두 감정을 의뢰한 결과 진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이내옥 유물관리부장은 “얼마 전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씨가 현지에 가서 벼루 뒷면의 필적을 감정한 결과 안 의사의 것으로 확인했다”며 “그러나 이 씨는 서예 전문가이므로 진품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벼루 전문가의 감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도쿄(東京) 벼루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는 구스노키 후미오(楠木文夫) 도쿄예술대 강사는 “안 의사의 필적과 비교한 결과 진품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면서 “힘과 품격을 모두 갖춘, 혼이 담긴 벼루”라고 밝혔다.
사이토 주지는 “벼루의 재료는 한반도 북쪽 압록강 변에서 나는 돌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다이린사에 벼루를 기증한 이는 도쿄에서 치과의원을 경영하는 히로세 다메히토(廣瀨爲人·71) 씨.
히로세 씨는 골동품 시장에서 유통되는 옛 만주철도 수집품 중에서 벼루를 발견해 구입했다.
사이토 주지에 따르면 히로세 씨는 벼루를 기증한 뒤 “혜량할 수 없는 세상의 인연이 내 등을 떠밀었는지 모른다”며 “안 의사의 벼루가 안주(安住)의 땅을 얻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다이린사는 안 의사가 뤼순감옥에 수감돼 있는 동안 담당 간수였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의 위패와 묘가 있는 곳이다.
안 의사를 감시하는 동안 그의 숭고한 이념과 고매한 인격에 감복한 지바는 고향인 구리하라에 돌아온 뒤 매일 다이린사에 다니면서 안 의사의 명복을 빌었다.
지바의 유족들은 안 의사가 처형 당일 아침 지바에게 써준 유묵(遺墨)을 70여 년간 몰래 간직하고 있다가 안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1979년 한국에 반환했다.
처형 전날 지바의 부탁을 받고 쓴 안 의사의 유묵에는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이라는 휘호와 함께 약손가락 윗부분이 없는 안 의사의 손바닥 인(印)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이 유묵은 현재 보물 569-23호로 지정돼 있다.
당시 지바의 유족들이 “안 의사의 유묵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기쁘지만 평소 존경해온 안 의사와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며 애통해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문화인과 정치인, 미야기 현 유지 등이 나서서 다이린사에 안 의사의 공덕비를 건립했고, 매년 안 의사와 지바를 기리는 법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있다.
사이토 주지는 “안 의사가 남긴 최후의 유품일 가능성이 큰 벼루를 소중히 보관할 것”이라면서 “다만 기회를 봐서 한국에 반환하는 방안도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미야기=천광암 특파원/ 윤완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