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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농업과문화

밀레 '만종'의 슬픈이야기

 

 

지난해 10월 프랑스 해외연수 일정으로 국립 허브 연구소 (CNPMAI : Conservatoire National des Plantes a Parfum, Medicinales, Aromatiques et Industrielles, 주소: Route de Nemours - 91490 MILLY LA FORET, 전화: 01 64 98 83 77)  를 찾았다. 1987년 허브의 생산, 연구, 보존, 판매, 유통 등의 발전과 촉진을 위하여 관련 종사자들에 의해 비영리 단체로 설립되었다. 파리의 남쪽 약 60km, 전통적으로 허브 재배가 활발한 지역에 4.2 헥타르의 면적 위에 위치하고 있었다. 

 

허브연구소 가까이 일반 국도를 달리며 보는 프랑스 농촌의 풍경은 정말 풍요롭고 고요해 보이는 것 같았으며 시골집들은 아담하면서 파리시와 뒤지지 않은 건물들이 많았다.  라벤더에 대한 집중 연구가 진행되고 향수 산업에 접목시키고 있는 연구소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마치 밀레의 그림을 보는 듯항 느낌을 받았다. 아하, 그런데 정말 이 곳이 밀레가  머물며 그림을 그렸던 곳이란다. 특히, 명화 '만종(晩鍾)'의 무대란다. 그 감동, 그 저녁 노을을 마주하였고 가이드로 부터   '만종(晩鍾)'의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창 밖으로 회색 빛 가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그린 명화 '만종(晩鍾)'은 프랑스의 자랑.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백화점 소유주였던 알프레드 쇼사르가 80만 프랑에 이 작품을 구입 해 루브르박물관에 기증한 후 한번도 거래된 적이 없었던 '만종'은 값을 매긴다는게 불가능한 보물이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1860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한 화가에 불과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프랑을 지원했단다. 이 1000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란다. 지금은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보물이자 국부(國富)를 만든 것이다.


루브르박물관에 돌아오기 전 '만종'은 미국 아메리카 미술협회에 팔렸다. 프랑스 측은 시민들의 모금활동까지 벌여가며 '만종'이 미국에 팔리는 것을 막으려 했었다. 그러나 결국 미국을 팔리고 말았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의 자존심이 구겨져 있을 때, 백화점 재벌 알프레드 쇼사르가 미국에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만종' 을 다시 사들인 것이다. 쇼사르는 이 그림을 개인 자격으로 소유하지 않고 루브르에 기증했다. '만종'은 '이삭줍기'와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진 그림 중 하나이다. 그림을 보면 하루 일을 마치고 농부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하는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그림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농부 부부가 바구니를 밭밑에 놓고 기도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 바구니가 감자씨와 밭일 도구를 담은 바구니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바구니에는 씨감자가 들어있던 게 아니라 그들의 사랑하는 아기의 시체가 들어있었다. 그 당시도 긴 불황과 가뭄으로 굶주림이 계속되고 있었다. 겨울을 지내면서 봄이 오면 다시금 씨감자를 심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다림과 함께 그들의 아기는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죽은 것이다. 그 죽은 아기를 위해 마지막으로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 '만종' 이란다. 왜 그림 속의 아기가 사라졌을까? 이 그림을 보게 된 밀레의 친구가 큰 충격과 우려를 보이며 아기를 넣지 말자고 부탁을 했다. 그래서 밀레는 고심 끝에 아기 대신 감자를 넣어 그려 출품했다. 그 이후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채 그저 농촌의 평화로움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유명해졌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