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으세요,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심장에 감정을 싣지 마라=정목 스님은 이날 ‘심장’과 ‘마음’에 관해 설했다. 왜 심장일까. “인도 갠지스강의 화장터에서 하루 종일 시신이 타는 걸 바라본 적이 있다. 팔도 타고 다리도 타더라. 그렇게 몸뚱이가 다 탔는데도 심장은 4시간을 더 타더라. 그만큼 질기고 튼튼하더라.” 우리 몸의 세포는 자연치유력도 있고, 재생력도 있다. 그런데 심장은 너무 탁월하고 튼튼해 그런 게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현대인은 심장병으로 돌연사 하는 경우가 많다. 의학계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스트레스가 많아서’ 등으로 이유를 설명한다. 그런데 정말 근본적인 이유가 뭔가?” 객석에 침묵이 흘렀다. 정목 스님이 입을 뗐다.
“그건 심장에 감정이 실려서 그런 거다. 그렇게 실린 감정은 하나하나 심장에 데이터로 기록된다. 대못으로 박히는 거다. 그게 결국 심장을 파괴하고, 멈추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가슴이 찢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심장이 아프고 따가운 걸 느낀다. 왜 그런가?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심장이 그렇게 반응하는 거다.”
정목 스님은 “감정을 바로 보라”고 했다. “우리는 감정과 나를 동일시한다. 그런데 감정은 원래 내가 아니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왔다가 갈 뿐이다.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불쾌하면 불쾌한 대로, 불안하면 불안한 대로 그걸 가만히 수용하면서 바라보라. 그럼 금방 알게 된다. 어떠한 감정도 오래 머물지 않음을 말이다. 아무리 길어야 2~3일이다.”
정목 스님은 감정을 ‘원숭이’에 빗댔다. 우리 안에 숱한 원숭이가 있다는 것이다. 고통스런 원숭이, 질투하는 원숭이, 불안한 원숭이, 우울한 원숭이, 뿌듯한 원숭이 등. “그런 원숭이들이 무대 위로 뛰쳐나올 때 덩달아 휘둘려선 안 된다. 한 발짝 관람석으로 물러나 ‘자~알 놀아라!’하며 바라보면 된다. 그렇게 주인이 쳐다보면 원숭이의 짓거리가 잦아들게 된다. 나중에는 노는 걸 멈추게 된다. 그런데도 어떤 감정이 오랜 세월 이어진다고 착각하는 건 자신이 그걸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 감정이 강아지처럼 된다고 했다. 길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감정을 다룰 수도 있고, 쓸 수도 있다고 했다. “인간의 수명이 왜 100년인가? 심장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100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심장에 감정을 싣지 않으면 수명도 자연히 길어진다.”
◆마음공부의 시작과 끝=강당을 나오면서 궁금했다. 정목 스님이 쏟아낸 ‘자기 소리’의 뿌리가 어딜까. 그래서 지난달 29일 서울 부암동에 있는 유나방송국(www.una.or.kr)을 찾았다. 나무와 풀, 바람이 좋았다. 거기서 정목 스님과 마주 앉았다. 스님에게 열 여섯 살에 출가한 이유부터 물었다.
“어릴 적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서 잘 놀았다. 그런데 놀면서도 내가 따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안에는 물음이 있었다. ‘나는 왜 사람이어야 하지? 재는 왜 나무여야 하나? 나는 왜 고래일 수 없는 거지?’ 지금 돌아보면 그게 근원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정목 스님은 특히 ‘바다의 고래’를 좋아했다고 한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바다는 무한대의 세계였다. 거길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고래가 되고 싶었다.”
1976년에 출가한 정목 스님은 소외된 이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매진했다. 교도소 법회도 하고, 불교방송도 진행했다. 그렇게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송담 스님이 써 주신 ‘이뭣고’라는 화두를 들었다. 뭔가 조금씩 알아지고, 뭔가 조금씩 보이는데 그게 뭔지 몰랐다. 고요해지긴 하는데 ‘탁!’하고 터지진 않았다. “답답했다. 어디까지 왔는지도 몰랐고, 어디로 갈지도 몰랐다. 도처에 스승이 있었으나 내 눈이 어두워 보질 못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위파사나(부처님이 직접 했다고 알려진 남방불교의 수행법) 책을 접하게 됐다. 당시 간화선 중심의 조계종단에선 위파사나 수행을 ‘외도(外道)’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위파사나 책을 읽으며 남몰래 10년간 수행을 했다. 부작용도 없었고, 가슴이 답답한 것도 사라졌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됐다. 정목 스님은 외국에 나가 여러 성인들의 수행처를 훑기 시작했다. 인도로, 티벳으로, 미얀마로, 스리랑카로, 부탄으로, 히말라야로 돌고 돌았다. 1달러짜리 방에다 짐을 던져놓고 갠지스강에서 밤을 새기도 했다. “나는 내가 자비심이 많아 지금껏 사회봉사를 그렇게 열심히 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건 나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더라. 그걸 아니까 내 삶의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더라. 나를 나타내려는 여행에서, 내가 누구인지 돌아보는 여행으로 바뀌더라.”
정목 스님은 마음공부의 시작과 끝은 ‘내려놓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내려놓음의 길은 너무나 다양하다고 했다. “그건 선택의 문제다. 대부분 사람이 수행의 길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다. 내가 감나무를 보면 저 사람은 벚나무를 보는 식이다. 그래도 나무는 나무다.” 그렇게 내려놓음을 계속 하다 보면 어찌 될까. “마음을 마음대로 쓸 수가 있게 된다. 그렇게 부리는 대로 뜻이 이루어진다. 거기에는 내가 한다, 안 한다는 주관과 객관이 없다.”
마지막으로 생활 속의 간단한 수행법 하나만 부탁했다. 정목 스님은 ‘분노 다루기’를 일러줬다. “분노가 생기면 한 템포만 멈춰보라. 호흡을 최대한 깊이 들이마시고, 길게 내쉬어 보라. 그럼 분노가 한풀 꺾인다. 다시 한번 들이마시고 내쉬어보라. 또 한풀 꺾인다. 들이마실 때 감정이 들어오고, 내쉴 때 분노(감정)가 분해되고 해체돼서 나간다고 생각하라. 그렇게 몇 차례만 하면 분노가 지나가는 게 보인다.” 2009년 10월 1일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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