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여성들
당귀, 타타리 메밀 발효음료 개발한 강원도 평창 박 정 자 씨
홀홀단신 귀농 후 자연농법·산야초 발효액 연구
당귀·타타리메밀 기능성 발효음료 공동 개발
“별다른 병이 있었던 건 아닌데 머리가 깨질 듯 아프더라구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도 딱히 어떤 병이라고 짚어내지도 못 했구요. 숨 막히는 도시생활이 저와는 맞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춘기 때부터 동경해오던 정겹고 아름다운 자연에서 살고자 했던 소망을 뒤늦게 이뤘다고나 할까요…”
남부럽지 않았던 도시생활을 접고 굳이 농촌으로 귀농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큰 아파트에서 남편과 애들 뒷바라지 하며 여느 가정주부처럼 지내던 그녀가 자연에 심취해 현재의 건강한 삶을 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제가 모든 것을 버리고 농촌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어려서부터 자연에 묻혀 사는 생활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무엇보다 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감기에 걸려도 약국에 가지 않고 민간요법에 의존할 정도로 양약과는 맞지 않았어요.”
당시 대기업에서 판매되는 발효음료를 먹어봤는데 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는 박정자 씨. “‘아! 이거다’ 싶었죠. 발효음료를 직접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그 때였던 것 같아요. TV나 언론 등에서도 서서히 건강과 웰빙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도 했었죠.”
<숙성된 당귀 발효액 향을 맡아보고 있는 박정자 씨.>
귀농 후 홀로서기로 자신 채찍질
2003년 그녀는 홀로 도시를 떠났다. 전북 남원 실상사 귀농학교에서 자연농법과 함께 산야초 발효액을 담가보기 시작했다. 이후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에서 1년간 산야초를 이용해 발효액을 만들었고, 또 거처를 전남 장흥으로 옮겨 발효액 제조 연구와 천연연색에 열중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강원도 영월에서 오미자와 산야초로 발효액을 만들다가 그해 10월 지금의 평창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 몇 년간 철저히 홀로 서는 법을 터득해가는 시기였다. 먹고 자는 데에 돈을 들이기 싫어 농촌의 빈집을 약간 수리해 살았다. 그러면서도 남에게 손을 내밀거나 친척·지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땅을 임대해 무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며 발효액 연구도 계속 진행했다. 그녀의 억척에 주위 농가들도 안쓰러워 할 정도였다. 현재 거주하며 발효액을 연구·제조하는 곳도 이전에는 두부공장이었는데, 싸게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2005년 영월에서 농사를 지으며 전문지식을 쌓기 위해 한국농업대학에 진학했다. 주중에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던 그녀는 주말에 영월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찜질방에서 자며 일요일 저녁에는 학교에 돌아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은 고단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의를 꺾지는 못했다.
농업대학에 다니면서 특강을 온 경기도농업기술원 관계자로부터 농업인기술개발사업을 접한 박정자 씨. 발효액 제조에 웬만큼 이력이 붙었지만, 그녀는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었다. 아니 그게 자신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함께 발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평창에는 메밀이 많이 재배되고 있었고 이를 이용한 지역축제도 열리고 있다. 평창은 당귀의 주산지이기도 해서 그녀는 메밀과 당귀를 잘만 이용하면 괜찮은 소득사업이 될 거라 확신했다. 한농대 특용작물과 교수가 농림부와 타타리 메밀을 이용한 연구도 수행한 적 있었던 터여서 도움 받을 사람도 생겼다.
마침내 2006년 평창군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사업을 신청했다. 당시에는 당귀나 타타리 메밀을 이용한 발효음료가 상품화된 것이 거의 없어서 사업선정에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발효액 연구…상품화로 보답할 터”
타타리 메밀(단달메밀)은 혈관을 튼튼히 해 고혈압이나 뇌일혈 예방에 효과가 있는 ‘루틴’ 성분이 일반 메밀보다 100배 이상 함유하고 있다. 또한 당귀는 피를 맑게 해 혈관질환에 효능이 있다. 박정자 씨는 이 타타리 메밀의 싹과 전초로 발효원액을, 그리고 당귀 잎과 뿌리, 전초를 이용한 기능성 음료 개발에 착수했다. 연구에는 평창군농업기술센터 백순규 기술개발과장이 총괄책임자로, 강원대학교 박철호 교수(성분 분석), 한국농업대학 장광진 교수(재배지도)와 서건식 교수(효능검사)가 함께 했다.
현재 연구비로 구입한 발효용 대형 옹기항아리 수십 개에는 2007년 연구를 수행하며 담근 당귀·타타리 메밀 발효액이 숙성 중에 있으며, 내년께 식품제조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시판할 계획이다.
“평소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해요. 처음 귀농할 때도 농업이 희망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결행한 것이고요. 제가 먹어서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발효음료 개발을 한만큼 계속 연구해볼 계획입니다.”
현재 그녀는 발효액 제조 외에도 13,200㎡(4천평)의 옥수수와 산채(곰취, 산마늘, 누룩치 등) 육묘, 산나물 재배 등을 혼자서 하고 있다. 앞으로는 발효음료를 사업화하는 데에도 더욱 노력할 계획이란다.
“귀농관련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린 것을 보고 가끔 사람들이 제 농장을 찾아 노하우를 묻고 가곤 하죠. 이분들과 자연농업과 발효액 만드는 얘기를 하며 가급적 많은 것을 나눠주려고 해요. 그게 제가 받은 것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해요.”
때 묻지 않은 농촌에서 자연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박정자 씨. 모두가 건강한 세상을 꿈꾸는 그녀의 노력이 천천히 결실을 맺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