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우은숙
이런 게 보통 사람 사는 모습 아닐까
지하철에 희고 부신 아가씨의 다리를
중년의 신사가 슬쩍, 안 본 듯 쳐다보는
언뜻언뜻 보이는 목련송이 같은 가슴
한 손에 고리잡고 한 손에 신문 쥔 남자
여자의 가슴팍을 살짝, 넘겨다 보고 마는
그러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확! 하고
뻥튀기 하듯이 튕겨져 나오면
눈동자 다들 슬그머니 제 자리로 옮기는
『시조 21』 2009 상반기호에서
이 작품은 세 수의 연시조인가? 한 수의 장형시조인가? 세 수 연시조로 읽을 수도 있겠고, 한 편의 장형시조로도 읽을 수 있겠다. 그런 의도로 첫 행과 끝 행을 띄워놓았다. 참 앙증맞은 배행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얄미울 정도다. 시적 내용 또한 내가 한 짓이 들킨 것처럼 얼굴 붉어지게 한다.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시는 주목하게 한다. 제목에 밑줄을 그은 것도 그런 이유다. 시가 어찌 고상하기만 해야 하는가? 우리 삶의 풍경이 어찌 아름답기만 하던가!
중년의 신사가 아가씨 몸을 슬쩍, 살짝 훔쳐보는 일, 그게 아름답게 보일리야 추호도 없지만 시적 자아도 그렇게 훔쳐보는 중년 신사를 훔쳐보고 있다. 그래서 공범의 혐의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러나 그 풍경들을 특별한 사람 아닌 보통 사람 사는 모습으로 보아낸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 그런 시선이 세상을 따듯하고 아름답게 할 것이다.
‘슬그머니’ 라는 낱말의 사전적 해석은 ①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슬며시 ② 혼자 마음속으로 은근히 ③ 힘을 들이지 않고 천천히, 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작품 속의 ‘안 본 듯 쳐다보는’ 이나 ‘넘겨다보고 마는’ 이 ‘슬그머니’와 연결된다. 그런데 종장에서의 ‘슬그머니’ 그리고 제목으로써의 ‘슬그머니’는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안 본 듯 쳐다보는’ 이라는 구도 ‘안 보는 듯 쳐다보는’ 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좋다. 사소한 문제를 눈감아 줘야 할 까닭이 있다. 그것은 형식에 대한 실험의식을 보이고 있고, 우리 삶의 풍경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실험은 시조의 미래를 위하여 지금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고, 따뜻한 시선은 사랑의 물결을 일으킬 바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한 행동 들킨 것 같아 그야말로 슬그머니 밀쳐버리고 싶지만, 그래도 나는 이 시를 나는 몇 번이나 읽는다. [문무학] @시조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