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힘
강경화(1951~2009)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은
저 마을 저녁 불빛이
아직 따뜻한 굴뚝 연기 사이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은
아직은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것은
갈 데 없는 고라니 토끼 고양이들이
우리 집 뒤뜰에 내놓은 궂은 저녁을
아직은 먹으러 오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들이 살아 가는 것은
아아, 그대여
그대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이름으로 그대가
어디에나 살아 있기 때문이다.
머물지 않고 사라지지 않을 ‘시詩’
작년 봄에 작고한 고故 강경화 시인(동덕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전 교수 역임)의 세 번째 신작 시집 『이제 나는 머물지 않을 수 있는데』가 도서출판 모아드림에서 출간되었다. 시인에게는 유고시집이 될 이번 시집은, 남편 강창민姜昌民 시인이 그 전체적 얼개와 흐름과 세목을 완성한 결과이다.
시인은 1951년 충남 공주 출생에서 출생하였으며, 이화여중고,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졸업했다. 197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세 개의 전쟁」 당선과 1975년 《현대문학》 추천완료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시집으로 『늦가을 배추벌레의 노래』(평민사), 『가라, 사랑의 세월이여』(우리문화사) 등이 있고, 번역집으로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도서출판 까치), 수필집으로 『사랑을 바꾸세요』(석필), 논문으로 「Blake의 ‘자아’와 전도된 세계」 등이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총 85편의 신작 시편은 시인 생전에 죽음의 예감과 고통 속에서 길어올린 언어의 정수라고 생각된다. 시인은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눈꽃 같은 초연함으로 가야 한다면”(「청산 어귀에 남기고 가오」) 떠나겠노라고 노래하였고, “내 가난에도 머물지 못하고/내 슬픔에도 머물지”(「풀꽃의 혼」) 못하는 삶과 시간들을 노래하였다. 아프고 눈부시다.
강경화 시집 『이제 나는 머물지 않을 수 있는데』는 서정시의 문법을 전형적으로 담고 있는 사례이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자신의 삶을 오랜 기억의 반추 속에서 성찰하는 일과, 문득 찾아온 ‘죽음’과 ‘이별’과 ‘떠나감’의 예감 속에서 생성된다. 그런데 시인은 현실적 행동을 통해 그것들을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상상과 꿈을 통해 그것을 수락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래서 모든 관계들이 원천적으로 소멸하는 ‘죽음’의 예감에도 불구하고, 그 관계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의 마음을 발화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죽음’과 ‘이별’과 ‘떠나감’을 예감한 한 시인의 육신을 관류하는 ‘사랑’과 ‘그리움’의 언어가 이번 시집의 외관이자 내질內質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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