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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농업과문화

세계 각국의 차 문화

세계 각국의 차 문화

중앙일보 2013.04.22 이지영 기자

 

 

 

 

 

인류가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시는 음료는 차(茶)입니다. 차는 학명 ‘카멜리아 시넨시스’인 차나무의 잎을 우려내 만듭니다. 같은 재료를 이용하지만 차를 마시는 문화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가공 방법과 곁들이는 식재료에 따라 맛도, 용도도 제각각입니다. 나라마다 다른 차 문화를 살펴봤습니다.

 

한국 예의 담은 차 한잔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예(禮)’를 강조한다. ‘다례(茶禮)’는 한국 차 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단어다. 중국의 ‘다예(茶藝)’나 일본의 ‘다도(茶道)’와는 다른 개념이다. ‘다례’는 차를 대접할 때 갖춰야 할 예의범절을 뜻하며, 획일화·규격화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간결한 것이 특징이다. 다례는 조상과 신에게 차를 올리는 종교적인 다례와 여염집의 손님맞이 다례, 왕실의 궁중다례 등으로 세분화된다.

한국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 시대를 거치며 선비 중심으로 형성됐다. 조선 말 이후론 여성 중심의 규방 문화로 바뀌어갔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사라지다시피 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상류층의 고급 문화로 되살아난 차 문화는 점차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생활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즐기는 차의 종류를 따져보면, 찻잎을 덖어 발효를 중단시킨 녹차의 비율이 발효차인 홍차나 반(半)발효차인 우롱차보다 높다. 또 ‘한국 차는 맛, 중국 차는 향, 일본 차는 빛깔’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차는 깊은 맛이 특징이다. 차에 곁들여 먹는 다식의 종류도 한·중·일 3국이 서로 다르다. 중국의 다식엔 견과류가 많고, 일본은 과자가 흔하다. 반면 우리나라의 찻자리에는 참깨·콩 등 곡식을 빻아 볶은 가루를 꿀이나 조청 등으로 반죽해 만든 다식이 주로 등장한다.

중국  물 대신 마시는 생활음료

 

중국에서 차는 생활 음료다. 더운 여름에도 차가운 물을 마시지 않고 따뜻한 차를 마신다. 각자 차를 우려낼 병을 가지고 다니며 끓는 물을 수시로 부어 차를 마시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 어디를 가도 찻물용 뜨거운 물을 구하기 쉽다. 중국의 수질이 좋지 않아 물만 마시기 힘든 상황이 차 문화를 확산시킨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또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을 먹고 난 뒤 차를 마시면 기름기 제거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차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했다.


중국의 차 역사는 기원전 2700년께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초에 중독된 신농(神農)이 찻잎을 먹고 해독됐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차는 한나라 때부터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았으며, 당나라 때 민간에까지 널리 전파됐다. 중국의 차는 종류도 다양하고, 지역에 따라 차를 대접하고 마시는 풍속도 제각각이다. 중국의 차 문화는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있어 별도의 특별한 예의를 따지지는 않지만 상대방의 잔에 차가 빌 경우엔 계속 따라줘야 한다. 중국 차 문화의 특징으로 꼽히는 ‘다예(茶藝)’는 손님에게 차를 낼 때 서커스 묘기처럼 기예를 부려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생긴 말이다.

일본   엄숙하고 진지한 ‘도(道)’

 

일본에선 차를 정신수양의 도구로 삼았다. 일본의 차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는 ‘다도’다. 일본의 다도는 16세 후반 센리큐(千利休)에 의해 완성됐는데, 그는 차를 끓이는 일을 참선의 한 종류로 보고 ‘4규(規)7칙(則)’이라는 다도의 규칙을 정했다. ‘4규’는 정숙한 마음으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 존중한다는 다도의 정신 ‘화(和:화목)’ ‘경(敬:존중)’ ‘청(淸:깨끗함)’ ‘적(寂:고요)’을 말하며, ‘7규’는 ▶다실의 꽃은 자연 그대로의 것의 쓴다 ▶다도 모임에는 약간의 시간의 여유를 갖는 게 좋다 등 일곱 가지 다도의 예법을 말한다. 20∼30년 전만해도 일본에선 다도가 신부수업의 필수코스로 인식되기도 했다. 결혼을 전후해 1년 과정의 다도 수업을 받는 게 흔한 일이었지만 최근엔 점차 사라지고 있는 문화다.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차는 잎차인 전차(煎茶·센차)와 가루차인 말차(抹茶·맛차)다. 전차는 우리나라의 녹차와 비슷한 비발효차지만 만드는 방식은 다르다. 녹차는 찻잎을 덖어 만드는 데 반해 전차는 쪄서 만든다. 말차는 증기로 쪄서 만든 잎차를 맷돌로 갈아 만든다. 말차 역시 열로 발효를 중단시킨 비발효차이며, 찻잎이 지닌 성분을 모두 섭취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햇빛을 본 찻잎으로 말차를 만들면 쓴맛이 강하므로 햇차의 새싹이 올라올 무렵부터 약 20일간 햇빛을 차단한 차밭에서 재배한 찻잎을 쓴다. 말차를 마실 때는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만든 차선으로 빠르게 섞어 거품을 낸다.

영국  ‘애프터눈 티’의 원조

 

중국의 차가 유럽으로 전해진 시기는 1560년께다. 영국은 포르투갈·네덜란드·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늦은 시기인 1630년대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차를 접했다. 영국 차 문화의 원조로는 포르투갈의 공주 캐서린이 꼽힌다. 1662년 캐서린 공주가 영국의 찰스 2세와 결혼한 뒤 차를 기호음료로 마시는 습관을 궁중에 퍼뜨렸다. 또 캐서린 공주는 결혼 지참금으로 인도 뭄바이 땅을 가져왔는데, 1839년 이곳에서 영국제 아쌈 홍차를 생산하게 된다. 아쌈차는 값비싼 중국산 수입차를 대신하게 됐고, ‘빅토리아 티’라 불리며 영국의 범국민적인 음료로 자리잡았다.


영국 사람들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차를 마신다. 오전 6시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마시는 ‘얼리모닝 티’, 토스트·달걀·베이컨 등 간단한 아침식사와 함께 마시는 ‘브랙퍼스트 티’, 오전 11시쯤 휴식을 취하면서 즐기는 ‘일레븐스 티’, 점심 식사에 곁들이는 ‘런치 티’, 오후 4∼5시쯤 스콘·케이크·과자 등과 함께 즐기는 ‘애프터눈 티’, 저녁식사 후 마시는 ‘애프터디너 티’, 잠들기 전 우유와 함께 마시는 ‘나이트 티’ 등 명칭도 다양하다. 특히 1840년 베드포드 공작부인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애프터눈 티’는 이제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차 문화의 대명사가 됐다.

러시아   독특한 주전자 ‘사모바르’

 

화려한 귀족 문화의 일부였던 러시아의 차 문화는 19세기 들어 대중화되기 시작해 오늘날 러시아 사람들이 보드카보다 더 많이 마시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 러시아 차 문화의 상징은 ‘스스로 끓인다’는 말에서 유래한 ‘사모바르(Samovar)’다. 사모바르는 작은 난로 위에 찻주전자가 올라가 있는 형태다. 난로 부분 가운데 숯이나 나무토막·솔방울 등의 땔감을 이용해 불을 피우는 곳이 있으며, 그 주위를 물로 채울 수 있게 돼 있다. 우리나라의 신선로를 생각하면 그 구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끓인 물을 빼낼 꼭지가 밖으로 나 있는데, 그 꼭지를 통해 찻주전자에 물을 붓고 차를 우려낸다. 또 남아 있는 차를 찻주전자째 난로 부분 위에 올려놓아 다시 데울 수도 있다. 춥고 건조한 러시아에서 사모바르는 난방기구와 가습기의 기능도 했다. 이제 전기나 가스로 편하게 물을 끓일 수 있게 되면서 러시아에서 사모바르로 차를 만드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집집마다 물려받은 사모바르가 많이 남아 있고, 여러 디자인의 사모바르들이 관광기념품점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전통적인 러시아식 차는 진한 홍차에 레몬을 넣거나, 벌꿀이나 잼을 넣어 달게 만든다. 또 차에 럼주나 보드카를 넣어 마시기도 한다.


터키   국책산업으로 육성된 차 산업

 

터키는 원래 커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커피보다 홍차를 많이 마시는 나라다. 1923년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정부가 앞장서 차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다. 커피를 생산하는 예멘 지역에 대한 실권을 잃은 뒤 비싼 값으로 커피를 수입해야 하는 데 따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차 재배에 나선 것이다. 터키는 1938년 동북부 흑해 연안 ‘리제’ 지역에서 처음으로 차 재배에 성공했고, 73년 국영기업 ‘차이큐르’가 들어선 뒤론 차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터키식 차인 ‘차이’는 일단 차를 졸이듯이 진하게 끓여낸 다음 뜨거운 물을 부어 희석시켜 마시는 게 특징이다. 차에 우유는 넣지 않고 설탕만 넣는다. 터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차이 중 하나인 ‘엘마 차이’는 얇게 저민 사과를 넣어 진하게 끓여내 만든다. 사과의 향과 맛이 가득하고 달콤하다.


 터키 사람들은 보통 하루 3∼5차례 차를 마시며, 한 번 마실 때 서너 잔씩 마신다. 찻잔에 차가 다 없어지기 전에 다시 채워놓는 것이 터키의 차 문화여서 차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경우에는 차 스푼을 반대로 눕혀 찻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모로코   박하향 가득한 녹차

 

북아프리카 사막지대에 위치한 모로코는 세계에서 녹차를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다. 18세기 영국을 통해 모로코에 처음 소개된 차는 무덥고 몹시 건조한 기후 조건과 쇠고기·양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식생활, 술을 금하는 이슬람 문화 등의 영향으로 소비가 급격히 늘어났다. 홍차보다 녹차를 많이 마시며, 1인당 연간 녹차 소비량은 1㎏에 달한다. 모로코 사람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차는 녹차에 설탕과 박하잎을 넣은 박하차다. 박하차는 카페나 식당·가정 등 모로코 어디를 가도 마실 수 있는 모로코의 ‘국민음료’다. 박하차를 마실 때는 석 잔을 마셔야 한다는 전통도 있다. 첫 번째 잔은 인생을, 두 번째 잔은 사랑을, 세 번째 잔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로코식 박하차 끓이는 방법은 이렇다. 우선 찻주전자 안에 녹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차를 우려낸다. 여기에 박하잎과 설탕을 넣어 3분 정도 지난 뒤 차를 잔에 따라내고 다시 주전자에 넣기를 두 번 반복한다. 이는 차와 설탕이 잘 섞이게 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설탕을 듬뿍 넣어 아주 달게 마시며, 손잡이가 없는 투명한 유리잔에 따라 마신다. 차를 따를 때는 주전자를 높게 올려 따른다.


미국   아이스티와 티백

 

대부분의 나라에서 차를 뜨겁게 마시지만 미국에선 차가운 차를 더 많이 마신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차의 80% 정도가 아이스티라고 한다. 아이스티는 미국에서 처음 마시기 시작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무역박람회에 리차드 블렌친든이라는 차 상인이 인도산 홍차를 대량으로 준비했다 날씨가 너무 더워 뜨거운 차를 마시려는 사람이 하나도 없자 얼음을 넣어 내놓은 것이 원조 아이스티다. 미국에서는 뜨거운 차를 만들 때도 아이스티를 만들 때처럼 설탕과 레몬을 많이 넣는다. 우유는 넣지 않는다. 차의 대중화에 기여한 티백도 미국에서 발명됐다. 1908년 차 상인 톰 설리번이 홍보용으로 호텔에 차 샘플을 보내면서 비단주머니에 포장한 것이 시초였다. 샘플을 받은 호텔에서 차를 우려낼 때 주머니째 사용했다고 한다. 귀찮게 차를 덜어서 넣을 필요가 없고, 찻주전자를 씻는 것도 간단했기 때문이다. 이 비단 주머니의 소재가 점차 거즈나 면으로 바뀌었고, 1950년께에 이르러선 종이 티백이 개발됐다.


●도움말=유양석 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명원문화재단 고문), 손연숙 원광디지털대 차문화경영학과 교수, 김영애 세계홍차문화연구소 소장
●참고자료=『차의 세계사』(열린세상), ‘한국과 서양의 차문화 및 차음식에 관한 연구’(원광대 석사학위논문, 김미숙)
(사진 중앙포토·위키피디아·유양석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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