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인일기
루쉰
루쉰(1881∼1936)은 중국의 소설가로, 의학을 전공하다가 중국의 정신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후대에 중국인들에게 있어 가장 영향력을 미친 소설가며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피해망상증 환자입니다. 피해망상증으로 표현은 되어있지만, 이 환자는 가장 먼저 깨우친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루쉰 자신을 그렸다고 보기에는 루쉰과 주인고은 무언가 다르고, 신지식인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적당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환자는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잡아먹힐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을 먹는 자체를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누구도 사람을 잡아먹는 점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 사람들을 관찰 하면서 식인이라는 단어를 찾아내어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그들은 것으로만 이해하는 척을 하며 속으로는 식인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모씨 형제는 지난 날 내 중학교 시절의 좋은 친구들이었다. 여러 해 동안 만나지 못하고 보니, 자연히 소식도 뜸하게 되었다. 얼마 전에 우연히 그 중 한 친구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듣고 고향 가는 길에 빙 둘러서 찾아갔다가 그들 중 형을 만나게 되었는데, 병을 앓던 친구는 형이 아니고 동생이라고 했다. 고생하여 먼 길을 찾아갔지만 그는 벌써 완쾌되어 어느 곳의 후임으로 부임해 가고 없었다. 그 형은 크게 웃으면서 일기장 두 권을 꺼내 보였다. 그 당시에 동생이 앓았던 병의 증상을 알 수 있을 거라며, 옛 친구이니 보여 줘도 괜찮을 거라고 했다. 가지고 돌아와 죽 훑어보니, 그 증상은 피해망상증 같은 것이었다.
내용은 어지러이 두서가 없었고, 허황된 말도 많았다. 날짜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먹빛이나 글자체가 같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한꺼번에 씌어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문맥이 갖추어져 있는 것을 뽑아 의사들의 연구 거리로 제시하고자 한다. 일기 중에 틀린 말이 있어도 하나도 고치지 않고 그냥 두었다. 단지, 사람 이름만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촌사람들이어서 별 상관없지만 편의상 모두 바꿨다. 또 책명은 본인이 완쾌된 후에 붙인 것이기에 다시 고치지 않았다.
(민국 7년 4월 2일 씀)
1
오늘 저녁은 유난히 달빛이 밝다.
내가 이 달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삼십여 년이구나. 오늘 달을 보니 정신이 더없이 상쾌하다. 지난 삼십여 년은 온통 정신나간 채로 지냈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러나 더욱 조심해야 한다. 아니, 저 짜오네 개가 왜 나의 두 눈을 쳐다보는 건가?
내가 무서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2
오늘은 전혀 달빛이 안 보여서 아무 멋대가리가 없다. 아침에 조심스레 집을 나서니, 짜오꾸이 영감의 눈빛이 좀 이상하다. 나를 무서워하는 것도 같고, 나를 해치려는 것 같기도 했다. 또 칠팔 명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면서 내가 눈치챌까 봐 꺼려하는 듯했다. 길가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보였다. 그 중에 아주 흉하게 생긴 놈이 입을 벌리고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나는 머리에서 발뒤꿈치까지 몸이 오싹해졌다. 그놈들이 준비를 다 갖춘 것을 알았다.
나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걸어갔다. 앞쪽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그곳에서 나를 보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눈빛도 짜오꾸이 영감 같았고, 얼굴빛도 모두 쇠빛처럼 푸르스름했다. 내가 저 아이들하고 무슨 원수진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건가 생각하니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이놈들 뭘 하는 거야!" 하고 호통을 쳐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은 달아나 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짜오꾸이 영감과 무슨 원수진 일이 있다고 길가는 사람마저도 저러는 걸까. 있다면, 20년 전쯤에 꾸찌우 선생의 다 낡아빠진 오래된 장부를 짓밟아서 그를 불쾌하게 한 일이 있었을 뿐인데 말이다. 짜오꾸이 영감은 꾸찌우 선생을 모르지만 그 소문을 듣고서 대신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길가는 사람들과 짜고서 나를 원수처럼 대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이들은 왜 그러는 걸까? 그때라면 그애들이 태어나기도 전인데 어째서 오늘 눈을 이상하게 치뜨고 나를 보는 건가? 나를 무서워하는 건가? 아니면 나를 해치려는 건가? 이거야말로 정말 무서운 일이며, 기이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아! 이제 알겠다. 아이들 에미나 애비들이 가르쳐 준 것이구나!
3
밤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곰곰이 따져 보고 확실히 해두어야겠다.
그놈들--그 중에는 현지사에게 걸려서 목에 칼 쓴 놈도 있고, 양반에게 뺨을 맞은 놈도 있고, 벼슬아치에게 마누라를 빼앗긴 놈도 있고, 부모가 빚쟁이에게 맞아 죽은 놈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때 안색이 어제처럼 그렇게 무섭거나 흉측스러워 보이지는 않았었다.
아주 이상한 것은 어제 길에서 만난 그 여자다. 자기 아이를 때리면서 입으로는 "이놈의 새끼야! 네놈을 물어뜯어야 속이 풀리겠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은 도리어 나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그 푸르스름한 얼굴에 이빨을 드러낸 한 떼거리가 '와아' 웃어대는 것이었다. 천라오우가 얼른 앞으로 나와서 억지로 나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끌려서 집에 돌아오니 집안 식구들이 모두 나를 모르는 체했다. 그들의 눈빛도 남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서재에 들어가자마자, 밖에서 문을 걸어 버렸다. 마치 닭이나 오리를 가두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일로 해서 나는 더구나 그들의 저의를 알아챌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 랑쯔 마을의 소작인이 와서 흉년이라고 투덜대며 나의 형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들 마을에 아주 악한 놈이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는데, 몇 사람이 그 간을 파내어 기름에 볶아 먹었더니 쓸개가 커졌다는 것이다. 내가 옆에서 말참견을 했더니 소작인과 형님이 나를 몇 번이고 쳐다보는 게 아닌가? 오늘에서야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밖에서 봤던 그놈들과 똑같았던 것이다.
생각할수록 나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뒤꿈치까지 소름이 끼쳤다.
그들은 사람을 먹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나를 못 먹을 것도 없는 일 아닌가.
길에서 봤던 그 여자가 "네놈을 물어뜯겠다."라고 한 말이나, 푸르스름한 얼굴에 이를 드러낸 채 웃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저께 소작인이 한 말, 이 모두가 분명히 암호였다. 알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독이다. 웃음 속에는 칼이 있다. 그들의 이빨은 모두 하얗게 배열되어 있어서 바로 사람을 먹는 도구인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악인이라고 생각진 않지만, 꾸씨네 장부를 짓밟고 난 후부터는 꼭 그렇다고 장담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들은 뭔가 생각하고 있는 듯한데, 나는 전혀 알아낼 수가 없다 게다가 그들은 사이가 나빠지면 금세 안면을 바꾸어서 상대를 악인이라고 떠들어댄다. 나는 형님이 논문 쓰는 법을 가르쳐 줄 때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형님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몇 마디 헐뜯으면 동그라미를 몇 개씩 쳐주었고, 나쁜 사람에 대해 몇 마디 좋은 평을 하면, 기발한 생각이 남과 다르다고 말하곤 하였다. 내가 그들의 심사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겠는가. 더구나 잡아먹으려고 할 때에는.
무슨 일이든 곰곰이 따져 봐야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종종 사람을 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도 설마 그럴까 했었다. 나는 역사를 들추어 조사해 보았다. 이 역사에는 연대가 없으며 페이지마다 구불구불 '인의도덕'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다. 나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밤새도록 자세하게 조사해 보았다. 그랬더니 글자 틈새에서 다른 글자가 나타났다. 책 가득히 사람을 먹는다는 의미의 '홀인'이란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책에는 이런 글자가 많이 씌어져 있다. 소작인도 이런 말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도 모두 히죽히죽 웃으며 이상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도 사람이다. 그들은 나를 먹고 싶어하는 것이다.
4
아침에 나는 잠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천라오우가 밥을 들여보냈다. 채소 한 접시와 찐 생선 한 접시. 생선의 눈알은 희고 굳어 있었으며 입은 벌려져 있어 사람을 잡아먹고 싶어하는 저 패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 몇 번 젓가락을 대어 보았으나 미끈한 게 물고긴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뱃속 창자까지 뒤틀려 먹은 것을 모조리 토했다.
"라오우, 형님께 말해 줘. 너무 답답해서 뜰에서 좀 걷고 싶다고."
라오우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조금 있자니, 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꼼짝 않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하려느냐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나를 놔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그러하였다. 형님이 늙은이 하나를 데리고 천천히 들어왔다.
그의 눈빛은 온통 흉측했다. 그는 내가 눈치챌까 봐 머리를 아래로 수그리고 안경 너머로 나를 훔쳐보았다.
"오늘 허 선생님을 모셔왔으니 진찰을 좀 받아 보자."
형님이 이렇게 권하기에, "그러지요!"라고 했다.
사실은 이 늙은이가 사람 죽이는 백정인지 내 어찌 알겠는가! 아닌게 아니라, 맥을 짚어 본답시고 살이 쪘나 말랐나를 재보겠지. 그 공로로 고기 한 점을 얻어먹을 거다. 나는 무섭지 않다. 사람을 못 먹어도 쓸개덩이는 그들보다 크다. 두 주먹을 들어 내밀고 그가 어떻게 하는지를 바라보았다. 늙은이는 앉아서 눈을 감고 한동안 만지작거리다가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가 귀신 같은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허튼 생각 말아요. 조용히 며칠간 요양하면 좋아질거요."
허튼 생각 말고 조용히 요양하라! 요양해서 살찌면 그들은 자연히 많이 먹을 수 있을 거다. 나에게 무슨 좋은 수가 있겠는가? 어찌 '좋아질' 수 있겠는가? 그들 패거리들은 사람 먹을 생각만 하며 수군거리면서도 체면 때문에 감히 당장에 손을 못 대고 있으니 정말 우습다. 나는 참을 수 없어 소리내어 크게 웃었더니 기분이 너무나 상쾌해졌다. 이 웃음 속에는 그 어떤 용기와 올바른 정신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늙은이와 형님은 모두 겁에 질려 나의 용기와 올바른 정신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용기가 있을수록 그들은 나를 더 먹고 싶어한다. 이 용기를 닮으려는 것이다. 늙은이는 방을 나와 얼마 안 가서 낮은 소리로 형님에게 말했다.
"얼른 먹어 버려요!"
형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도 본래 그런 사람이려니. 이 대발견은 의외인 것 같지만 사실은 형님의 의중에 있던 것이었다. 떼거리로 나를 먹으려는 사람은 바로 나의 형님인 것이다.
사람을 먹으려는 게 나의 형님이야!
나는 사람을 먹는 사람의 형제야!
나 자신이 잡아 먹힌다 하여도 여전히 나는 사람을 먹는 사람의 형제인 것이야!
5
요 며칠간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해 보았다. 만약 그 늙은이가 사람 백정이 아니고 정말 의사라 해도 여전히 사람 먹는 사람일 거다. 그들의 스승인 리스쩐이 만든 "본토00"라는 책에는 분명히 사람고기를 끓여 먹을 수 있다고 씌어 있는데, 그래도 그 늙은이가 자신은 사람을 안 먹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형님도 역시 털끌만큼도 억울할 게 없다. 나에게 글을 가르쳐 줄 때에 자기 입으로 '자식을 바꾸어 먹는'("좌전"에 나오는 말)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었다. 또 전에 우연히 어떤 나쁜 사람을 두고 얘기하면서 그런 놈은 죽여야 할 뿐 아니라 '그 고기를 먹고 그 가죽을 깔고 자야 한다.'("좌전"에 나오는 말)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에 나는 어려서 그 말을 듣고 한나절이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저께 랑쯔 마을의 소작인이 와서 간을 먹었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형님은 조금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고 줄곧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이걸 보아서도 옛날처럼 사람의 심사는 잔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식을 바꾸어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바꿀 수 있을 것이며, 누구든 다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형님이 그 그럴듯한 이치를 들어 설명할 때는 멍청하게 흘려 버렸으나, 이제 와서 알고 보니 형님이 그 얘기를 할 때 입가에 사람의 기름이 묻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마음속에는 사람을 먹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6
칠흑같이 어둡다. 낮인지 밤인지 모르겠다. 짜오네 개가 짖어대기 시작한다. 사자 같은 흉측한 마음, 토끼 같은 비겁함, 여우 같은 교활함...
7
나는 그들의 수법을 알아냈다. 곧장 죽이는 것은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다. 앙갚음이 두려운 것일 게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연락하여 그물을 쳐놓고서 나를 자살하도록 몰아대는 것이다. 며칠 전에 길가에서 보았던 남녀의 모습이나 형님의 태도를 보더라도 십중팔구 틀림이 없다. 허리띠를 풀어서 대들보에 걸고 내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으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살인죄도 붙지 않고, 또 그들이 바라던 것을 얻게 될 것이다. 모두들 너무나 기뻐서 흑흑 소리를 지르며 웃겠지. 그렇지 않으면 놀라서 걱정하다가 죽을 줄로 아는데, 그렇다면 몸이 좀 말라서 덜 좋겠지만 그런대로 만족해할 것이다.
그들은 죽은 고기만을 먹을 수 있을 뿐이다!...어떤 책에선가 '하이에나'란 동물은 눈빛과 모습이 매우 흉측스럽다고 씌어진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들은 언제나 죽은 고기만을 먹으며, 엄청나게 큰 뼈다귀도 잘게 씹어서 뱃속에 삼켜 버린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하이에나는 늑대와 한 족속이고, 늑대는 개의 조상이다. 그저께 짜오네 집의 개가 나를 흘낏흘낏 쳐다보았는데 그놈도 한패로, 벌써 연락이 닿은 모양이다. 늙은이는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지만 내가 어찌 속아넘어가겠는가?
가장 가련한 것은 나의 형님이다. 그도 사람인데, 어쩌자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건가. 뿐만 아니라 한패가 되어 나를 먹으려 하다니! 습관이 되어서 잘못인 줄도 모르는 건가? 아니면 양심을 잃어버려서 알고서도 죄를 짓는 건가?
나는 사람 먹는 사람을 저주하는데, 형님부터 먼저 마음을 돌리도록 해야 할 것이다.
8
사실 이런 이치는 지금쯤 그들도 벌써 깨달았어야 하련만...
갑자기 누군가가 찾아왔다. 나이는 스무 살 안팎으로 생김새는 뚜렷치 않았다. 그는 만면에 웃을 띠고서 나에게 아는 척하였지만, 그의 웃음은 진정한 웃음 같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사람 잡아먹는 일이 옳은 거요?"
그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흉년도 아닌데 어째서 사람을 먹어요?"
나는 얼른 깨달았다. 그도 한패이며, 사람 잡아먹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용기를 백배 내어서 계속 물었다.
"옳은 일이오?"
"그런 걸 물어서 뭘 하시렵니까? 참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좋은 날씨였다. 달빛도 매우 밝았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묻고 있는 거다.
"옳은 일이오?"
그는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다. 어물어물 "아니오."라고 대답하였다.
"옳지 않다구요? 그런데 어째서 그들은 잡아먹으려는 거요?"
"그런 터무니없는 일이..."
"터무니없는 일이라구? 랑쯔 마을에서는 지금도 잡아먹는단 말이오. 그리고 책에도 온통 씌어 있소. 새빨갛게!"
그는 얼굴빛이 쇠빛처럼 퍼렇게 변하더니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아마 있을지도 모르지요. 옛날부터 그랬으니까요..."
"옛날부터 그랬다면 그게 옳은 일이오?"
"나는 당신과 이런 문제를 놓고 따지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그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당신 말은 틀리단 말입니다!"
벌떡 일어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보니, 그 사람은 어느덧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 땀이 흠뻑 젖었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어렸지만 역시 한패거리가 틀림없다. 그 애비 에미가 가르쳐 준 것이리라. 아마도 벌써 그 자식에게까지 가르쳐 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이들까지도 밉살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건가 보다.
9
자기 자신은 사람을 먹고 싶은데, 남에게는 먹히려 하지 않으니까 의심에 찬 눈빛으로 서로서로 흘겨보는 것이려니...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편안히 일하고, 거리를 오가고, 밥을 먹고, 잠 잘 수 있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이것은 단지 하나의 문지방이요, 관문일 따름이다. 그러나 그들은 부자, 형제, 부부, 친구, 사제지간, 원수, 그리고 서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 모두 한패거리가 되어서 서로 격려하고 견제하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한 발짝을 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10
이른 아침에 나는 형님을 찾아갔다. 형님은 방문 밖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의 등뒤로 다가가서 방문을 가로막고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하였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해 보라구."
형님은 재빨리 고개를 돌리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몇 말씀만 드리려 하는데, 말이 잘 안 나오네요. 형님, 아마도 옛날의 야만인들은 모두 사람을 먹었을 테지요. 어떤 사람은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서 사람을 먹으려 하지 않고 오직 착하게 되려 했기 때문에 사람답게 변하였고 또 참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한데, 어떤 사람은 여전히 사람을 먹었겠지요. ... 벌레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것은 물고기나 새, 원숭이로 변하였다가 곧장 사람으로 진화했을 겁니다. 어떤 것은 착해지려고 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벌레로 남아 있는 거지요. 사람을 먹는 사람은 사람을 먹지 않는 사람에 비해 몹시 부끄러울 겁니다. 벌레가 원숭이와 비교해서 부끄러운 것보다 그 정도가 더 심할 겁니다. 이야가 자신의 아들을 삶아서 걸주(고대의 폭군)에게 먹인 이야기는 옛날옛적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반고(중국에서 천지개벽 때에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고 하는 전설상의 천자의 이름)가 천지를 연 이래로 줄곧 먹어 오다가 이야의 아들에 이르고, 이야의 아들로부터 줄곧 먹어 오다가 쉬시린에 이르고, 쉬시린으로부터 줄곧 먹어 오다가 랑쯔 마을에서 붙잡힌 사나이에게까지 이르게 된 겁니다. 지난해 성안에서 죄수가 처형되었을 때는 폐를 앓는 사람이 그 피를 만두에 적셔 먹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먹으려 합니다. 형님 혼자서야 어쩔 수도 없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패에 끼여들 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먹는 자들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나를 먹을 수 있듯이 형님도 먹을 수 있어요. 같은 패끼리도 먹어 버릴 수 있어요. 하지만 한 발짝만 방향을 바꿔서 지금 당장 마음을 고치기만 한다면 모두가 태평스럽게 됩니다. 옛날부터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이 오늘부터라도 좋아지려면 안 된다고 해야 합니다. 형님, 형님은 말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전에 소작인이 소작료를 감해 달라고 했을 때 형님은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 형님은 냉소를 띨 뿐이었으나 점점 눈빛이 흉측해지더니 그들의 내막을 파헤쳐 버리자 얼굴빛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대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짜오꾸이 영감과 그의 개도 그들 속에 있었다. 그 무리들이 슬금슬금 문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사람은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복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퍼런 얼굴에 흰 이빨을 드러내고 히죽히죽 웃고 있다. 본 기억이 있는 놈들이다. 모두들 사람을 먹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해서 모두 생각이 같지 않음을 나는 안다. 옛날부터 그랬으니까 먹는 것이 당연하다는 패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 싶어하는 패의 두 종류다. 남들에게 폭로되는 것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화가 잔뜩 났지만, 히죽히죽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때, 형님이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소리쳤다.
"모두들 나가! 미치광이가 무슨 구경거린가!"
그때 나는 또 그들의 기묘한 계책을 깨달았다. 그들은 마음을 고쳐먹기는 커녕 이미 그물을 쳐둔 것이다. 내가 미치광이임을 간판으로 내세우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나를 먹어 치우더라도 걱정 없을 뿐 아니라, 어쩌면 동정을 받을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소작인의 이야기 중에 여러 사람이 한 명의 악인을 먹었다는 것도 바로 이렇게 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상투
수단이다!
천라오우도 화가 잔뜩 나서 달려왔다. 하지만 내 입을 어떻게 틀어막을 수 있겠는가. 나는 이 패거리들에게 끝까지 말했다.
"당신들은 마음을 바꿔야 해. 속속들이 회개하는 거야. 앞으로 사람을 먹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 끝내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도 먹혀 버릴 거야. 아무리 많이 낳는다 하더라도 모두 참다운 사람에게 제거될 거야. 사냥꾼이 이리를 몽땅 잡아 버리는 것과 같이! 벌레와도 같이!"
그 많은 살들은 모두 천라오우에게 밀려 나갔다. 형님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천라오우가 나를 달래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방안은 온통 캄캄했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머리 위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흔들거리다 와르르 무너져 내 몸 위에 쌓였다 무척 무겁다. 움직일 수가 없다. 나를 죽이려는 게다. 나는 놈의 무게가 가짜임을 깨닫고 곧 몸을 빼낼 수 있었다. 온몸에 땀이 솟아났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말했다.
"당신들, 빨리 회개해! 속속들이 회개하는 거야. 깨달아야 해. 앞으로는 사람을 먹는 인간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11
해가 보이지 않는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매일 두 끼니의 밥.
나는 젓가락을 들다가 형님 생각이 났다. 누이동생이 죽은 원인도 그에게 있음을 깨달았다. 그때 누이동생은 다섯 살이었다. 귀엽고 예쁜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어머니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형님은 어머니에게 울지 말라고 했었지. 틀림없이 자기가 먹었으니까 어머니가 우시는 게 꺼림칙했을 것이다. 만일에 아직도 마음이 꺼림칙하다면...
누이동생은 형님에게 먹혔다. 어머니는 알고 계셨을까? 나도 모르겠다. 어머니도 아마 알고 계셨으리라. 그러나 우실 때는 아무 말씀도 없었다. 아마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셨을 게다. 내 나이 네댓 살 때라고 기억을 하는데, 방 밖에서 바람을 쐐고 있을 때 형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부모가 병환이 났을 때 자식은 제살을 한 점 떼서, 잘 삶은 것을 부모가 드시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그때 어머니도 그것을 몹쓸 일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한 점을 먹는다면 큰 덩어리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 우시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 봐도 가슴 아프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12
생각할 수가 없다.
4천 년 동안 끊임없이 사람을 먹어온 곳, 그 속에서 나도 오래동안 살아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분명히 깨달았다. 형님이 집을 관리하고 있을 때 누이동생은 죽었다. 그가 슬그머니 음식 속에 섞어서 나에게도 슬쩍 먹이지 않았다는 법도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살을 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젠 내 차례가 되었지만...
4천 년의 사람 먹는 역사를 가진 우리,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젠 안다. 참다운 사람을 만나 보기가 쉽지 않다.
13
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아직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을 구해야지...
(19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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