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탐한 이 포도밭 … 붉은 물방울
[중앙일보] 입력 2013.10.31
지난 19일 오후.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공항에서 남서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자 콜차구아 계곡의 ‘로스 바스코스’ 와이너리에 도착했다. 세계 5대 샤토(1등급 그랑크뤼) 중 하나인 프랑스 ‘샤토 라피트 로칠드(이하 라피트)’가 1988년 인수한 곳이다. 로칠드 회장인 에리크 드 로칠드 남작이 현장을 직접 둘러보고 골랐다고 한다. 프랑스 특등급 샤토가 칠레에 설립한 최초의 와이너리다. 라피트는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가 ‘무통 로칠드·오브리옹·마고·라투르 등 5대 샤토 중 으뜸’이라고 평한 곳이다. 라피트가 만든 1869년산 와인 한 병이 2010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23만 달러(약 2억6400만원)에 팔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발 200m의 구릉 밑 평지에는 580㏊(약 175만 평)의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어른 무릎 높이의 포도나무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줄 맞춰 서 있다. 수석 와인메이커 마르셀로 가야르도(44)는 “바다에서 40㎞ 떨어져 늘 해풍이 불고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크다”며 “와인 재배엔 최적의 기후”라고 말했다. 포도밭 관리담당 호세 루이스 오르티스(32)는 “토양에 석회석이 적당히 섞여 물이 잘 빠지고 유럽과 달리 필록세라(포도나무 병충해의 일종)의 피해를 전혀 보지 않는 점도 로칠드 남작이 이곳을 고른 이유”라고 덧붙였다. 나무들 옆에 가로로 길게 붙은 고무 호스의 용도를 묻자 가야르도는 “최근 설치한 관수 자동화 시설”이라고 설명했다. 카베르네 소비뇽·시라 등 품종과 강수량에 맞게 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포도나무는 이곳처럼 땅에 낮게 붙어 있을수록 좋은 품종”이라고 덧붙였다.
로스 바스코스 와이너리의 저장고에서 와인을 담은 오크통이 늘어서 있다. 고품질 와인을 만들기 위해 프랑스 라피트에서 제작해 공수했다. 와인셀러에 들어서자 수백 개의 오크통이 진한 향을 풍겼다. 프랑스 라피트에서 제작해 공수한 것들이다. 보통 대중적인 와인에 쓰는 포도들은 비용을 낮추기 위해 자동설비로 수확한다. 하지만 로스 바스코스의 ‘그랑리저브급’(고급) 와인은 손으로 직접 따서 프랑스산 라피트 오크통에서 숙성시킨다. 3~4월 말인 수확철엔 현지 농민을 비롯해 500여 명이 손으로 수확해 좋은 포도를 골라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 5만 병이 한국에 왔다. 라피트가 이마트 전용 라벨을 붙이고 블렌딩도 맞춤으로 했다. 이마트 20주년 특별 와인 ‘로스 바스코스 뀌베 20주년(이하 뀌베20)’이다. 다음 달 1일부터 이마트 전국 매장에서 판매된다.
와이너리 샤토(게스트하우스) 2층에서 뀌베20을 시음했다. 병을 딴 후 1시간~1시간 반이 되자 와인향이 더욱 살아났다. 그간 로스 바스코스 그랑리저브급은 카베르네 소비뇽 100%로만 만들었다. 뀌베20은 수차례의 시음을 거쳐 카베르네 소비뇽 70%, 카르메네르 15%, 시라 10%, 말베크 5%의 새 블렌딩을 뽑아냈다. 가야르도 수석와인메이커는 “라피트 와인의 고급스러움을 살리면서 한국 소비자들이 더 쉽게 즐길 수 있는 와인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라를 섞어 과일향을 더하면서 카베르네 소비뇽의 맛을 끌어올렸고 아르헨티나에서 유명한 품종인 말베크를 더해 묵직함을 가미했다”고 설명했다.
라피트는 그간 영국의 국립미술관이나 미국·독일에 프로젝트 형태로 맞춤 라벨 제품을 공급한 적이 있지만 아시아에는 이마트가 처음이다. 라피트사 이민우(40) 한국 대표는 “유럽에선 대형마트가 저가 이미지라 2011년 처음 이마트의 제안을 받은 라피트 본사가 여러모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라피트 수출 책임자가 방한해 이마트 와인매장을 살펴보는 등 2년간의 협의 끝에 뀌베20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대형마트를 주로 찾는 점을 감안하면 로스 바스코스와 라피트의 와인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가 이번에 들여온 5만 병은 일반적인 와인 수입량 5000병의 10배에 달한다. 이마트 주류담당 바이어 이형순(41) 부장은 “물량 자체도 많았고 이마트 와인 매장은 창고형인 유럽 대형마트와 달리 고급 와인이 많고 와인 전문가가 상주해 라피트의 고급 이미지에 손색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대량 수입으로 운송료·물류비·보관비·세금 등을 낮추고 유통 단계를 줄인 덕에 싼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비슷한 품질의 칠레 와인이 4만9000원대인 데 비해 뀌베20은 2만5000원이다.
한국무역협회 와인수입 통계에 따르면 칠레는 올 1~8월 한국에 와인을 가장 많이 수출했다. 이 기간 전체 수입물량 중 25.7%를 차지해 14%인 프랑스를 제쳤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인식 덕이다. 이마트가 로스 바스코스와 접촉한 것도 한국인이 선호하는 칠레 와인을 라피트 기술로 만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와인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 보르도산과 버금가는 품질,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위 ‘진한 맛’, 발음하기 쉬운 이름 등이 칠레 와인이 인기를 끄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콜차구아(칠레)=최지영 기자
국내에 수입되는 와인은 칠레산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무역협회가 조사한 올해 1~8월 와인 수입 동향에 따르면 국내 수입되는 와인 네 병 중 한 병은 칠레산이었다.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금액 기준으로는 프랑스산이 30%를 넘는 비중으로 1위를 차지했다. 칠레산은 2위를 차지했다.
국가별로 와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올해 이탈리아는 4490만hL(헥토리터)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돼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이어 프랑스와 스페인이 각각 4410만hL, 4000만hL로 뒤를 이었다.
올해 국내 와인시장에서는 ‘스테디 셀러’의 강세가 돋보였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와인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보다 기존에 선호했던 제품 위주로 소비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매년 수백 종의 신종 와인이 국내에 소개되지만 올해는 국가·품종·가격대가 다양했던 와인 시장이 전통의 강자 위주로 재편된 한 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 들어 이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와인 ‘베스트 10’에는 칠레의 G7·신포니아·카르멘, 이탈리아 모스카토 등 4개 와인브랜드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에도 판매량 상위권에 포함된 전통의 강자들인데 올해의 경우 입지가 더 탄탄해졌다.
불황 탓에 중저가 와인이 잘 팔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올해 이마트 톱10 와인의 가격은 최저 6500원(신포니아 스위트), 최고 2만2900원으로 전체 평균가격이 1만4000원을 넘지 못했다. 전체 와인 판매량에서도 3만원 미만 와인은 86.4%를 차지한 데다 매출 비중으로도 63.1%에 달했다.
기호식품 가운데 부드러운 것을 선호하는 마일드화 현상은 와인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알코올 도수가 7~12도로 낮은 화이트와 스파클링 와인의 판매가 늘어났다. 금양인터내셔날이 올 들어 9월까지 수입한 스파클링 와인은 총 2만8595병으로 지난해보다 14% 늘었다. 화이트와인은 같은 기간 전년 대비 9.3% 많은 5만6682병이 팔려나갔다. 묵직한 맛이 대부분인 레드와인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전체 매출에서 20%에 불과했던 화이트와 스파클링의 비중이 올해 40% 가까이 늘었다”며 “소비자 기호 변화에 따라 수입 품종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라피트는 그간 영국의 국립미술관이나 미국·독일에 프로젝트 형태로 맞춤 라벨 제품을 공급한 적이 있지만 아시아에는 이마트가 처음이다. 라피트사 이민우(40) 한국 대표는 “유럽에선 대형마트가 저가 이미지라 2011년 처음 이마트의 제안을 받은 라피트 본사가 여러모로 고민했다”고 말했다. 라피트 수출 책임자가 방한해 이마트 와인매장을 살펴보는 등 2년간의 협의 끝에 뀌베20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이 대형마트를 주로 찾는 점을 감안하면 로스 바스코스와 라피트의 와인을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가 이번에 들여온 5만 병은 일반적인 와인 수입량 5000병의 10배에 달한다. 이마트 주류담당 바이어 이형순(41) 부장은 “물량 자체도 많았고 이마트 와인 매장은 창고형인 유럽 대형마트와 달리 고급 와인이 많고 와인 전문가가 상주해 라피트의 고급 이미지에 손색없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설득했다”고 말했다. 대량 수입으로 운송료·물류비·보관비·세금 등을 낮추고 유통 단계를 줄인 덕에 싼 가격을 매길 수 있었다. 비슷한 품질의 칠레 와인이 4만9000원대인 데 비해 뀌베20은 2만5000원이다.
한국무역협회 와인수입 통계에 따르면 칠레는 올 1~8월 한국에 와인을 가장 많이 수출했다. 이 기간 전체 수입물량 중 25.7%를 차지해 14%인 프랑스를 제쳤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인식 덕이다. 이마트가 로스 바스코스와 접촉한 것도 한국인이 선호하는 칠레 와인을 라피트 기술로 만든다는 점 때문이었다. 와인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 보르도산과 버금가는 품질,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위 ‘진한 맛’, 발음하기 쉬운 이름 등이 칠레 와인이 인기를 끄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콜차구아(칠레)=최지영 기자
저렴해도 맛만 좋소 … 6900원인 'G7 까버네' 많이 마셔
국가별로 와인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제와인기구(OIV)에 따르면 올해 이탈리아는 4490만hL(헥토리터)를 생산할 것으로 전망돼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위에 올랐다. 이어 프랑스와 스페인이 각각 4410만hL, 4000만hL로 뒤를 이었다.
올해 국내 와인시장에서는 ‘스테디 셀러’의 강세가 돋보였다.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와인 소비자들이 새로운 제품보다 기존에 선호했던 제품 위주로 소비한 것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매년 수백 종의 신종 와인이 국내에 소개되지만 올해는 국가·품종·가격대가 다양했던 와인 시장이 전통의 강자 위주로 재편된 한 해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 들어 이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와인 ‘베스트 10’에는 칠레의 G7·신포니아·카르멘, 이탈리아 모스카토 등 4개 와인브랜드가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에도 판매량 상위권에 포함된 전통의 강자들인데 올해의 경우 입지가 더 탄탄해졌다.
기호식품 가운데 부드러운 것을 선호하는 마일드화 현상은 와인 시장에서도 나타났다. 알코올 도수가 7~12도로 낮은 화이트와 스파클링 와인의 판매가 늘어났다. 금양인터내셔날이 올 들어 9월까지 수입한 스파클링 와인은 총 2만8595병으로 지난해보다 14% 늘었다. 화이트와인은 같은 기간 전년 대비 9.3% 많은 5만6682병이 팔려나갔다. 묵직한 맛이 대부분인 레드와인의 인기는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와인업계 관계자는 “2~3년 전만 해도 전체 매출에서 20%에 불과했던 화이트와 스파클링의 비중이 올해 40% 가까이 늘었다”며 “소비자 기호 변화에 따라 수입 품종을 다양화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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