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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업계 거인' 카길의 페이지 회장

'곡물업계 거인' 카길의 페이지 회장

조선일보 : 2014.09.20

 

[Weekly BIZ] [Cover Story]

 

세계의 밥상 150년 지배한 비결? "호기심이 농업을 창조산업으로 만들었다환경이 크게 변할 때 호기심 없으면관행 바꾸고 혁신할 적응력 생기지 않아 上場하지 않은 가족기업이었기 때문에 장기적 시각으로 통크게 투자해 급성장 10년 뒤 기업의 경쟁력은 투명성 公示할 수 없는 일은 하지 말자는 게 원칙 142조 초일류 기업이 "7년마다 두 배로 성장 목표"인류의 풍요로움을 위해 성장인구 증가로 식량 소비량도 계속 늘어 전 세계서 온 최정예 직원 400명 모아 12년후 변화를 예측하며 미래를 준비 구글 압도하는 18개국어 번역 시스템 "정확한 번역이 정확한 소통 가능케해" 각국서 일하는 직원들의 몰입·소통 위해 현지인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어로 바꿔매출 140조원이 넘는 세계 최대 곡물기업 카길(Cargill)의 회장을 인터뷰한 곳은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충남 당진의 사료 공장이었다. 아직 직원들이 입주하지 않아 텅 빈 건물의 2층 회의실 한편에 탁자 2개를 붙여 급조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1시간 반 동안 대화를 나눴다.

 

 [Weekly BIZ] [Cover Story] 지난 16일 마무리 공사 중인 충남 당진의 카길코리아 사료 공장에서 만난 그렉 페이지 회장은 “1980년 한국을 처음 찾았으며, 김치와 불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 22시간의 초미니 일정으로 방한한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 곧장 한국 직원들과 간단한 워킹 런치(업무 얘기를 하며 하는 식사)를 한 뒤 인천공항으로 가 오후 4시 비행기로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수행원도 없이 혼자였다. / 윤동진 기자'곡물업계의 거인(Grain Giant)'으로 불리는 그렉 페이지(Page·62) 회장은 카길의 오랜 전통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수행 비서 없이 홀로 인천공항에 도착해 수하물도 직접 찾았다. 카길 창업자 가문은 1963년부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문 경영인 페이지 회장은 8대 회장이며 회장 취임 후 아시아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Weekly BIZ] [Cover Story] 카길은 '세계의 밥상을 지배하는 기업'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미국 중부 아이오와주 시골에서 곡물 창고 하나로 시작해 주로 곡물 유통으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식품·물류·금융·에너지 산업까지 진출해 있다.

  농민들이 야간에도 일할 수 있는 야간용 트랙터를 만들고, 농지의 위성사진과 토양 샘플을 활용해 거기 맞는 최적의 농법을 가르쳐 주며 돈을 번 '창조 기업'이기도 하다.

  카길은 지난해 매출 1365억달러(142조원)에 순익 23억달러(24000억원)를 거두었으며, 68개국에서 1430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창사 후 150년 동안 철도혁명·농업혁명·세계화혁명·정보화혁명 같은 대변혁이 일어났는데, 카길이 한결같이 세계 최고 자리를 유지한 비결은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회복력(resilience)입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 세계적인 변화가 있을 때마다 용기를 갖고 민첩하게 대응한 것입니다. 특히 낙관적인 시각이 중요합니다. 이는 변화를 위협이 아니라 기회로 바꿉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회복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려면 반드시 호기심을 동반해야 한다는 겁니다. 환경이 변화할 때 호기심이 없으면 기존 관행을 바꾸고 새로운 것을 배울 동인(動因)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는 나지막하면서도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또 한 가지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래를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화입니다.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카길은 미국의 대표 기업도 아니었는데, 그때 이미 '세계화가 앞으로 살길'이라고 생각했어요. 다른 하나는 중요한 고비마다 창업자 가족 차원의 투자 의지가 있었다는 겁니다. 창출되는 현금을 미래를 위해 꾸준히 투자한 것, 그것이 네 번의 혁명 고비에서 더욱 성공한 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10년 후를 위해 무얼 준비해야 하나요?

 "몇 가지 테마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는, 세상이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카길 내부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세상에서는 감출 것이 아예 없어야 한다'. 앞으로 기업이 성공하고 싶다면 투명성을 높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카길의 직원 행동 강령 7가지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이 세 번째, '정확하고 정직하게 기록하라'는 것입니다.

 "7가지 원칙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법을 지켜라', '존엄성과 존중으로 대하라' 같은 7가지 원칙에는, 외부에 공시(公示)를 할 수 없거나 장부에 명확하게 기록할 수 없다면 하지 말라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투명성을 강조하셨는데, 카길은 비상장사이고 가족회사라 베일에 싸인 기업, 투명하지 않은 기업이란 인식도 있습니다. 왜 상장하지 않는지요, 또 가족기업을 어떤 시각에서 봐야 하는지요.

 

"저희가 투명하지 않다고 하셨는데(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마 전 오프라 윈프리 쇼에 카길이 소개되고, 육가공 처리 시설을 촬영하기도 했습니다(웃음). 주식은 대부분 '패밀리' 소유지만, 채권을 발행하기 때문에 공시 의무가 있고, 분기 실적도 공개합니다. 일각의 오해를 우리도 알고 있어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가족기업의 장점은 명료합니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규모 있는 투자나 사업 계획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겁니다."

 

 

[Weekly BIZ] [Cover Story] 다소곳하게 손 모은 '곡물 거인' 지난 16일 그렉 페이지 회장이 아시아 최대 규모 사료 공장(연산 87t)으로 건설 중인 카길 당진 공장을 찾았다. 기자는 팔짱을 끼거나 손을 들어 올리는 자세를 요청했다. 하지만 페이지 회장은 언론은 늘 그런 식으로 찍자고 한 뒤 곡물 거인의 비밀이란 식으로 제목을 붙인다며 손을 다소곳하게 모아 촬영에 응했다. / 윤동진 기자150년 동안 농축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오면서도 연매출 142조원 글로벌 초일류 기업 반열에까지 오른 카길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페이지 회장은 위클리비즈와 1시간 30분 동안 인터뷰하며 몇 가지 키워드를 들려줬다. 그가 들려준 핵심 키워드는 크게 5가지였다.

 

1차 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만들어낸 창조 경영

 

캐나다에서 식용유 원료인 '빅토리 카놀라'는 대박 농산물이다. 수확량이 기존 품종보다 12% 많은 데다 트랜스 지방은 없고, 포화 지방 함량도 낮다. 덕분에 시장에서 인기다. 그런데 이 품종의 탄생 배경에는 카길이 있다.

 

특정 지역에서 데이터를 100여개 이상 수집, 철저히 분석한 뒤 특정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최적의 투입 요소와 투입량을 산출해 주는, 카길의 넥스트필드(NextField)라는 첨단 영농법 덕분에 탄생한 품종이 빅토리 카놀라인 것이다. 기존의 카놀라 품종에 어떤 비료를 주고, 수분은 얼마나 공급할지, 또 어떤 토양에서 키울지를 농부들에게 조언해 주는 과정에서 개량된 품종이 나온 것이다.

 

이처럼 카길은 그냥 곡물을 사들이고, 사료를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창조적인 발상으로 다양한 농업 컨설팅 서비스까지 하면서 매출 기반을 넓혔다.

 

페이지 회장은 "카길이 150년간 꾸준히 성장해 온 데는 낙관적인 생각을 기반으로 조직 차원에서 호기심을 갖고 모든 변화에 빠르고 혁신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호기심과 혁신은 바로 '창조'와 동의어이다.

 

카길은 연매출이 1300억달러가 넘는 거대 기업인데도 7년마다 2배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뛴다. 쉽게 하기 힘든 발상이다. 페이지 회장은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데,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식량 소비량도 늘어나기 때문"이라며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살고 풍요롭기 위해서는 우리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성장의 당위성을 창조적으로 해석한 셈이다.

 

12년 후를 내다보는 미래 경영

 

기자는 200811월 미국발() 금융 위기가 한창일 때 미국 미네소타에 있는 카길 본사를 찾은 적이 있다. 당시 카길 본사에는 전 세계 20여개국에서 온 정예 직원 400여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과제는 '2020년 카길을 디자인하는 것'이었다. 카길은 1998년에도 농산물 공급과잉 등의 변화를 예측하면서 2010년을 준비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페이지 회장은 "카길의 역사를 보면 2가지 중요한 조합이 있어 성공할 수 있었다"면서 "한 가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 사고나 대변혁이 벌어질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민첩함이었고, 또 한 가지는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10년 후를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페이지 회장은 이 질문에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는 "몇 가지 테마가 있다고 본다"고 했는데, 첫째는 앞서 언급했던 투명성의 제고이다.

 

둘째 테마는 강화되는 NGO(비정부기구)의 힘에 대한 긍정적인 대응이다. 그는 "앞으로 NGO가 기업 전략에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NGO들이 점점 더 많은 공시와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업이 무엇을 만드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는지 알고 싶어 합니다. 환경문제, 탄소 배출량부터 시작해서 직원들의 안전, 식품 안전에 대해서까지 답해야 하기 때문에 더 능동적인 준비와 소통이 필요합니다."

 

비상장사지만 투명하다

 

카길이 외부로부터 가장 비판받는 대목 중 하나는 '투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장하지 않은 기업이기 때문이다. 카길은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분기별 실적 공시도 하고, 사소한 지분 변경도 대부분 공표하고, 외부인에게 공장 시설도 공개한다는 것이다.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코리아 대표는 "카길은 비상장사여서 상장회사에 비해 공개되는 기업의 정보가 적을 수 있지만, 기업 내부적으로 투명성은 아주 높다"고 말했다. 오른쪽 위 기사 참고

 

페이지 회장은 "14만 전 직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법을 준수하고 모든 걸 기록하라는 등 7가지 원칙의 핵심은 '우리가 공시를 할 수 있거나 장부에 명확하게 기록할 수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서 우리가 불투명하다고 비판하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이사회 차원, 오너 차원에서 카길이 무엇을 하고 왜, 어떻게 하는지 더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

 

2000년대 초,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70% 이상을 담당하던 서부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가 정정(政情) 불안에 휩싸였다. 공급 불안 우려로 코코아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이때 카길이 해결사로 나섰다.

 

카길은 베트남을 대안 생산지로 주목했다. 베트남 정부와 협력해 코코아 제조 기법을 알려주면서 재배 농가를 늘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얼마 후 글로벌 시장에서 코코아 가격은 안정세를 되찾았다. 카길 역시 이 과정에서 안정적인 코코아 확보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봤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해 낸 사례이다. 카길에 비판적인 언론인인 브루스터 닌도 "카길은 인도의 IT 기업, 러시아의 석유 기업 가스프롬보다 더 확실하게 세계화 시대의 수혜를 챙기는 기업"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페이지 회장은 "글로벌 경영의 성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이라며 "카길 최고 경영진이 항상 세계 각국을 돌며 현지 직원과 소통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카길 문화에 아주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순환 보직"이라며 "한국 직원이 미국과 제네바에서 일하고, 반대로 비()한국인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지 회장은 카길에선 '문화는 신발을 신고 다닌다(Culture travels in shoes)'는 말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려면 직접 발로 가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페이지 회장은 "카길은 글로벌 경영 성공을 위해 현지 경영진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현지 경영진이 현지 상황을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통 경영

 

카길은 구글을 압도한다고 자평하는 '번역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사내 문서를 불어, 스페인어, 일어, 중국어, 한국어는 물론 인도네시아어, 폴란드어까지 18개국 언어로 번역하는 시스템이다. 1차 번역은 소프트웨어로 하지만, 이를 다시 사내 커뮤니케이션 부서와 현지 조직 인력들이 손본다. 현지인이 가장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내는 것이다.

 

카길의 사료 자회사인 카길애그리퓨리나 강화순 상무는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카길은 번역을 단순히 번역으로 보지 않고 소통으로 본다. 정확한 번역이 정확한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는다"고 전했다.

 

카길의 조직 문화는 거대 기업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소박하다. 페이지 회장은 "공항에 카길 코리아 사장이 마중 나왔는데 그것도 과분했다. 난 혼자 택시 타고 호텔로 가려고 했는데"라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유럽에서 회의를 주재한 뒤 혼자 이코노미석을 타고 귀국한 일도 있다. 그는 "다음 날이 토요일이어서 집에서 푹 쉬면 되는데 굳이 2~3배 값을 주고 비즈니스석을 탈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모두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으며, 다음 날 바로 일을 해야 하거나 7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면 비즈니스석을 타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길의 직원 구성을 보면 아이비리그 출신보다 농축산업을 전공한 중부나 남부 지역 대학 출신이 많다. 페이지 회장은 카길의 인사 정책을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 모든 카길 사업장에 가면 '카길 리더십 모델'이란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15년째 유지하고 있는 철학이 담겨 있는데, 동그란 차트에 사분면으로 나눠 적혀 있습니다. 첫째는 실행 능력입니다. 정확히 우선순위를 파악하는 능력과 결단력, 타인의 능력을 개발하는 능력이 포함됩니다. 둘째는 지식인데, 고객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지식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셋째는 호기심과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넷째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이런 조합을 갖춘 사람을 끊임없이 찾고 있습니다."

"카길은 플로리다 탬파에서 인산비료를 생산한다. 그 비료로 미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콩(대두)을 생산하고, 이는 미국으로 와서 식품이나 콩기름이 된다. 일부 대두(콩) 식품은 다시 태국으로 가서 닭의 사료로 쓰이고, 이 닭은 다시 가공 처리된 뒤 일본과 유럽의 수퍼마켓 매장을 차지한다."

카길의 한 임원 사내 연설문에 나오는 이 표현은 카길의 사업 영역이 얼마나 방대하고, 글로벌한지 잘 보여준다. 그러나 농업, 1차 산업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뚜렷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140조원이 넘는 카길의 매출은 혼다·포드를 앞서고, 애플·GE와 비슷하다. 하지만 포천(Fortune) 글로벌 500대 기업 명단에 카길은 없다. 비(非)상장 기업이기 때문이다.

1865년 창업 이래 설립자인 카길 가문과 그의 사위 맥밀런(Macmillan) 가문의 자손이 전체 주식의 80% 이상을 갖고 있다. 금융권 대출도 거의 받지 않았으며, 언론과도 잘 접촉하지 않아 '은둔의 기업'으로 불리기도 한다. 만일 상장된다면 세계 28위, 미국 9위의 기업에 해당한다. 비상장 회사 중에서는 세계 최대이다.

카길은 농부들에게서 밀·옥수수 같은 농산물을 사들여 저장하고, 이를 가공해서 내다 판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인산비료 공장도 갖고 있다. 가축의 사료를 팔고, 사육·도축·육가공도 한다. 과일을 재료로 주스용 원액을 가공해 식음료 회사에 팔고, 각종 식품 첨가물을 만들어 판다. 또 이들 계열사가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도 있다.

카길은 열렬한 자유무역주의 옹호 기업으로 세계 농산물 시장 개방에 앞장서고, 계열화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 세계 농촌과 농민을 거대 자본에 예속시킨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에는 1988년 사료사업으로 처음 진출했으며, 현재 국내 1위의 사료 업체이다.

 

카길의 창조경영

카길은 사업 대부분이 전통적인 1차 산업 영역이지만, 창조와 혁신으로 초일류를 지향하는 열정은 다른 기업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카길은 영농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파종 단계에서부터 정밀 영농(precision agriculture) 기법을 활용해 농가 생산성을 극대화한다. 위성사진과 토양 샘플을 활용해 특정 지역에 대한 경작 환경을 철저히 분석하고, 해당 농작물 재배에 필요한 최적의 투입 요소들과 투입량을 산출해 준다.

영양분과 물이 부족한 토양에서도 수분과 토질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영농 기계들을 개발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일도 한다.

카길은 경작 과정에서도 생산성 제고를 위한 다양한 기술 혁신을 주도해 왔다. 일례로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야간에도 씨앗을 심을 수 있는 트랙터를 개발, 대규모 경작지를 소유한 농가들이 24시간 내내 파종 작업을 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전 세계 농작물의 작황에 대한 실시간 정보들을 과학적으로 분석, 전 세계 먹을거리의 가격과 공급 안정성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

카길이 직원 성과를 관리하는 방식 역시 창조 경영의 사례이다. 많은 기업이 직원의 성과 평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하지만 카길은 직원을 A, B, C등급으로 구분하는 연말 평가(rating)가 없다. 카길은 대신 직원들의 성과 창출을 돕는 '과정(process)'에 집중한다. 성과 평가에 들어가는 노력을, 직원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쏟아붓는 게 훨씬 효율적이란 판단에서다.

카길이 중시하는 또 하나의 가치는 '완벽한 안전(complete safety)'이다. 적어도 안전과 관련한 이슈는 현장 직원이 주도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업 문화를 만들었다. 이를테면 '아차 사고 보고서'라는 제도가 있다. 직원들이 자칫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일을 스스로 공개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 방안을 찾아 다른 직원과 공유하는 제도이다. '관찰카드'라는 제도도 있다. 직원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옆의 동료들이 일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발견한 문제점을 정리해서 서로 공유하는 것이다. 안전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옆 동료라는 이유에서다.

인구에 비해 식량이 부족할 것이라는 맬서스의 예측은 빗나갔다. 맬서스는 카길과 같은 창조 기업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던 것 같다. 1차 산업인 농업도 창조 경영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  

 

그레고리 페이지 회장은 누구?

 

1952년 미국 노스다코타 보티노에서 태어나 노스다코타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74년 카길의 사료 부문에 말단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미국(육우회사 엑셀)과 태국(가금류 회사), 싱가포르 등에서 요직을 거쳤다. 이후 카길의 자회사인 파이낸셜마켓그룹에서도 일했다. 20008월 카길의 이사회에 멤버로 선임됐고, 20076월부터 201312월까지 카길의 CEO를 지냈다. 카길 이사회 의장(회장)20079월 이후 계속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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