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333관측대
학사장교 1기로 전방 철책 부근에 포병 소대장 임무를 수행했었지요. 그 때, 울타리 없는 막사의 창문이 등황색으로 물들면 텅빈 연병장에는 축복처럼 별이 내렸지요. 그 해도 연말이 되면 눈과 추위와 절망 속에도 작은 위문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야전잠바 깃을 세우고 꾸깃꾸깃 주머니 속 편지를 만지며 이가 시리도록 캄캄한 겨울밤을 지키던 초병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겨울 하늘에 박혀있던 총총한 별빛이 작은 불빛으로 다가서는 겨울 밤입니다. 영하의 날씨에 도전장을 내고 훈련으로 보냈던 그 푸른 시절이 아스라이 서해의 일몰처럼 따스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가슴에 뜨거운 조국을 담고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랜 후, 그 뜨거웠던 가슴에 사랑하는 가족을 담고 쉬임 없이 달려 왔습니다. 넘어지면 일어서고 다시 일어서서 벅찬 운명의 강을 건너며 멀고 높고 험한 산길을 천천히 그리고 아파하며 넘어 왔습니다. 어려운 時代를 살고 있습니다. 時代의 아픔이 內出血되어 가슴이 져며 오는 한 해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더 힘들 새해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준비하지요. 전우들의 큰 노고와 수고에 격려의 마음과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다난했던 한해가 저물고 다시금 떠오를 여명의 날들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귀둔리와 천도리의 병렬식 빈 옥수수 밭을 지나온 마른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문득 허한 가슴으로 그리움이 다가 오는 때입니다. 연말, 지나간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푸른 시절의 이야기가 담긴 빛바랜 얼굴들을 보았습니다. 이제 세월의 저편에서 가슴에만 남아 있는 푸른나라의 얼굴들 입니다. 이름도 잊혀진 사진 속 얼굴보다 진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얼굴이 더 많이 있네요. 그리운 얼굴들이 교차하는 1980년대 젊음이여! 333관측대여! 응답하라! OVER! 그리고 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