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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농업속인물

출발 丙申年 책에서 희망 찾다

출발 丙申年 책에서 희망 찾다

조선일보 입력 : 2016.01.02


 
'나의 생애와 사상'

나의 생애와 사상|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천병희 옮김|문예출판사|274쪽|9000원

 

우리 세대의 정신적·사회적 성장에 도움을 준 세 권의 자서전을 꼽으라면, 마하트마 간디와 존 스튜어트 밀, 알베르트 슈바이처 세 사람의 자서전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슈바이처 박사의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은 내가 대학에서 정년 퇴직한 뒤 삶을 살아 가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슈바이처 박사의 자서전을 젊어서 한 번 읽고, 일흔을 넘긴 70대의 나이에 다시 한 번 읽었다.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나는 올해 아흔여섯이 된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벌써 2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슈바이처 박사의 생애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끎임없이 고민하게 한다

슈바이처 박사는 독일인이지만 프랑스와의 접경지대에 살았고,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20세기의 은인(恩人)이다. 그는 스물넷의 나이에 대학교수가 되었고, 전통 있는 교회의 목사이자, 파이프오르간 연주의 권위자였다. 파이프오르간 제작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 그 스스로 "남들이 한평생에 걸쳐 이루어 놓은 일을 24세 때 3가지 영역에서 성취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철학)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철학)
그는 이런 남다른 성취에도 불구하고 예수와 같은 서른의 나이가 되자 더 값있고 소중한 일을 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 당시 '세계에서 버림받은 아프리카에는 선교사보다 의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기사를 우연한 기회에 접한 그는 의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가서 그들의 생명과 영혼을 보살펴주기로 결심한다.

몇 해에 걸쳐 교수직과 의대 학업을 병행하면서 의사 자격을 얻는다. 그리고 열대 의학까지 연구한 후에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세 가지 직책을 뒤로 하고 아프리카로 향한다. 이후 그는 무려 60년 가까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봉사를 이어갔다. 고된 의료봉사를 하면서도 철학적 사색과 연구를 계속해 학계의 주목받는 저서를 남긴다. 유럽에 들를 때는 여전히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해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 준 불멸의 윤리관은 바로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다.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은 물론 세계관의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생명의 존엄성'이다. 종교적 가치관 역시 생명의 존엄성에 바탕하고 있다. 생명의 존엄함이야 말로 자연과 인간은 물론 모든 존재하는 것의 주어진 천명(天命)이다. 슈바이처는 그것을 이론적 탐구가 아니라 자신의 생애를 통해 받아들였다.

생명의 존엄성은 우리에게 인간애의 의미와 책임을 요청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며 인간다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가르친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그의 정신적 제자가 있고 그분의 외동따님은 우리나라를 다녀가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윤리나 종교, 철학이나 모두가 다 안고 있는 질문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이런 고민을 게을리 할 수도 없다. 슈바이처 박사의 숭고한 정신을 물려받아 2016년에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았으면 좋겠다. 비록 책을 쓰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저마다 마음의 회고록을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한중록'
[화해와 치유] 불가능한 화해를 꿈꾸는 당신께
한중록|혜경궁 홍씨 지음|정병설 옮김|문학동네|488쪽|1만5000원

 



작품은 어떤 모습으로든 실상을 반영한다. 인간의 심리 속에는 갈등하는 사람과 화해하고 싶은 욕망과 화해하고 싶지 않은 욕망이 공존한다. 허구적 작품은 화해의 욕망을, 실화는 그 반대의 방향을 담기 쉽다. 우리가 접하는 고전이 흔히 상대편이 몰락하면서 사필귀정이란 전리품을 안고 치유받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유이다.

그러나 현실은 화해와 치유는커녕 남은 여생과 다음 세대까지 갈등이 오래 지속된다. 실화는 대개 그 현실을 담고 있다. 한편으로 화해를 바라면서도 차라리 숱한 가슴앓이의 고통을 감내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내면에 깊숙이 도사린 감정의 상처를 덧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 사례를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혜경궁의 삶은 수많은 갈등 실화 가운데서도 기간이 길고 극적이다. 책의 큰 줄거리와 내용은 상식이 되어 있으나 풍부하고 세밀한 결은 직접 읽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만큼 흥미롭다. 사도세자, 정조, 친정이 핍박받은 사연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친정이 핍박받는 데 대한 분노와 해명이 중심을 이룬다.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

 

 

혜경궁은 하늘을 함께 이고 살 수 없는 사람들과 한 하늘 아래 한 궁궐 안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을 말한 적이 있다. 함께할 수 없다는 감정은 진실이고, 함께해야 하는 생활은 현실인데 그 양자 사이의 갈등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한중록'은 뜻밖에 욕설이 난무하는 책이다. 그 욕설은 화해하기 힘든 사람들과 공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표현하면서 왜 조선의 귀족들은 화해를 그렇게 어렵게 여겼는지 설정이 아닌 현실로 보여준다.

혜경궁은 자신을 에워싼 권력형 인간들에게 고통받으면서 그 현실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고, 결연히 죽을 수도 없었다. 대부분의 적은 가깝게 있었다. 손을 내밀면 바로 화해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면종복배(面從腹背, 겉으로는 따르나 뒤로는 배신함)의 군상들이다. 감정을 숨기고 한 하늘을 이고서 참고 사는 것을 화해라 여기며, 구차하게 공존의 삶을 사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녀가 행한 절제이자 금도(襟度)였다.

다행히 80세로 장수한 혜경궁은 권력 주변에 웅크리고 있는 인간 군상의 대부분이 사라진 뒤까지 지켜보았다. 살아 있을 때 "그리 마오소서"하며 관계의 회복을 시도했으나 실제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구차하게 시도했던 화해는 모두가 사라진 때에야 겨우 실현되고 있다.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혔던 이들에게 '한중록'은 깊은 연민의 감정을 담아 그 행동과 심리를 밝히고 있다. 연민의 감정으로 보니 불완전한 존재로서 한 세상에 공존한 것이, 용서할 것도 같았다. 그렇게 평생을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그녀도 가슴에 맺힌 병을 치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명의 수학'
[과학 트렌드] 새로운 생물학이 '수포자'를 구원하리라
생명의 수학|이언 스튜어트 지음|안지민 옮김|사이언스북스|496쪽|2만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던 15년 전쯤 나는 자진하여 수학과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물리학을 학문의 꽃으로 만들어준 수학에 이제 '생물학을 부탁해'라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생명의 수학' 저자도 이렇게 말한다. "10~20년 전에 수학이 생물학에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오늘날 그 주장은 거의 모든 논쟁을 압도한다." 그날 나의 간언에 생물학으로 뛰어든 수학도는 달랑 한 명이었다.

'자연의 패턴'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 등으로 이미 우리 독자들에게 친숙한 수학 저술가 이언 스튜어트는 생물학 역사에서 일어난 다섯 차례 혁명에 수학이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이제 여섯 번째 혁명이 본격적으로 수학에 따라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훨씬 다양성이 높은 분야이기 때문에 형태, 논리, 과정은 물론 패턴이 없는 듯 보이는 불확실성과 우연성도 수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생물학만이 갖고 있는 창발성(emergence)이 수학의 도전을 자극하리라 생각한다. 물리학과 화학은 1 더하기 1이 반드시 2여야 하는 학문이지만 생물학에서는 종종 1 더하기 1이 2보다 크다.

최재천 이대 교수(에코과학)·국립생태원장
최재천 이대 교수(에코과학)·국립생태원장
저자는 한 발짝 더 내딛는다. "21세기 수학의 지평은 생물학에 따라 확장될 것"이라고. 생물학이 수학의 도움으로 발달하는 것보다 수학이 생물학 덕택에 도약할 것이라는 말이다. 수학은 지금 우리가 고등학교 교실에서 배우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체이다. 매년 적어도 수학 논문 100만 편이 나오고 있고, 그들은 단순한 계산 문제를 풀어낸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담고 있다. 2015년에 가장 유행했던 은어 중 하나가 바로 '수포자'였다. 섣부른 원인 분석과 해법이 난무하는 가운데 나는 어쩌면 생물학이 수학포기자에 대한 새로운 길을 터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수학 성적 때문에 죽도록 고생했다.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대개 80점씩 받는 수학에서 30점을 넘긴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잃은 점수를 국어와 영어에서 만회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나이 서른이 넘어 20대 초반 하버드대학생들과 나란히 앉아 수학을 다시 공부하며 나는 알았다. 내가 수포자가 된 것은 대한민국의 수학 교육이 나를 포기했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 또 한 번 수학 특강을 자원한다. 수학을 포기한 이 땅의 많은 젊음에 생물학을 권한다. 과학자는 되고 싶은데 수학에 자신이 없어 생물학을 택했던 이전 세대와는 달리 당당히 생물학에 뛰어든 다음 수학을 품어라. 그러곤 전혀 새로운 '생물수학'을 만들어내라. 저자는 말한다. "생물학에서의 수학은 자신만의 특별한 성격이 있다." 생물학이 이끄는 21세기 수학은 수포자들의 변신을 기다린다.

 



'호밀밭의 파수꾼'

[새해의 결심] "靑春은 청춘들에 주기엔 너무 아깝다"
호밀밭의 파수꾼|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공경희 옮김|민음사|279쪽|8000원


"청춘(靑春)은 청춘들에 주기엔 너무 아깝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다. 그 같은 늙은이나 할 법한 말이지만, 불행하게도, 이 말은 전적으로 진실이다. 여드름투성이에 세상만사를 아는 것처럼 행세했던 10대의 나를 지금 만난다면 꼭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진지한 척 그만하고 그냥 마음껏 즐겨."

칙칙한 사춘기 소년의 전형(典型) 같았던 16세,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읽었다. 그때는 주변 모든 이가 '짝퉁(phony·책에 나온 은어)' 같은 인간이고, 나를 속박하고 있는 서구 자본주의가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영국엔 나 같은 칙칙한 10대들이 수백만 명쯤 있을 것이다(물론 한국에도). 그중 누군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다면 16세의 나와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내가 홀든 콜필드(이 책의 주인공이다)야. 이 소설은 바로 내 이야기야."

사실 이 책은 냉정하고 냉혹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법에 관한 소설이다. 로봇 같은 인간들로 가득 찬 것 같은 세상에서 자신만의 인간적인 무언가를 지키려고 애쓰면서도, 외부의 세상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막 퇴학당한 뒤 삶의 의미를 찾아 뉴욕 밤거리를 헤맨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시사하듯, 인생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강렬한 성적 에너지로 가득한 청춘이 정작 그 에너지를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남자는 그런 에너지가 사라진 뒤에야 여성들과 제대로 관계 맺는 법을 배우게 된다. 홀든 콜필드 역시 그랬다. 그의 구애(求愛)는 너무나 서투르다. 하지만 16세 때 나도 그랬다.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 보니, 그 시절 연애에 족족 실패한 원인을 알 것 같았다.

팀 알퍼 칼럼니스트
팀 알퍼 칼럼니스트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위에서 말했듯 16세짜리 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세상에 자신 같은 이가 혼자가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다. 16세 소녀들이 읽어도 좋다. 또래 남자들이 왜 그렇게 염세적인 '밥맛'들인지 알 수 있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착하고 말 잘 듣던 이쁜 내 아이가 갑자기 분노와 경멸로 가득 차 고함을 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새해를 맞아 작년을 정리하고 앞으로 미래를 위한 결심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집어 들어봤으면 한다. 이 책은 그런 용도로 딱이다. 과거의 잘못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귀신(鬼神)인 양 자신의 기억에서 내쫓아야 할 것이 아니다. 잘못은 귀중한 것이다. 잘못은 당신을 당신답게 해주는 것들이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실패한 사람은 현재의 자신을 인정하 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게 홀든 콜필드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그러므로, 그저 "청춘은 청춘들에 주기 너무 아깝다"고 말하는 것만으론 모자라다. 인생이란 때로는 낭비 그 자체이기도 하다. 2016년엔, 우리 모두 작년에 우리가 저지른 모든 잘못에 대해 조금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좀 덜 진지해지고 좀 더 마음껏 삶을 즐기자는 말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