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 농촌 보내 농업 발전시켜라"
[중앙일보] 입력 2015.04.03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가 어떻게 변화할지 제시하는 학문이다. 다만 하나의 미래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건 점성술사의 영역이다. 미래학에서는 복수의 대안적 미래(alternative futures)를 내놓는다. 이를 토대로 개인이나 조직, 국가가 바람직한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확실성이 커지는 사회에서는 미래학자를 찾는 사람이 많아진다.
미래학계의 세계적 석학인 짐 데이터(82) 미국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 교수도 그중 하나다. 국가 대계를 세우는 정치가들, 100년을 내다보고 신사옥을 지으려는 기업인 등 다양한 사람이 그를 찾는다고 한다. 본지는 저출산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한국의 미래를 그에게 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달 e메일로 20차례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이뤄졌다. 데이터 교수가 쓴 27쪽짜리 논문을 먼저 읽은 뒤 문답이 진행됐다. 마지막 답은 방문 강의를 하고 있는 KAIST에서 날아왔다.
-미래학에서 인구는 어떤 의미를 갖나.
“문화권마다 다르다. 단일민족 사회라고 말하는 한국인에게 인구란 특정 유전자와 문화적 특징을 가진 특정한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되기(become)’는 어렵다. 미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미국은 다인종 국가다. 인종 갈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누구든 ‘인구’로 받아들인다. 신규 진입자들을 환영한다.”
-인구 문제가 한국에 주는 의미는 더 클 수밖에 없겠다.
“미국은 새로운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나라의 ‘얼굴’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그런 두려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배경에서 미국은 로봇이나 사이보그, 포스트휴먼(인간의 유전자에 기술을 주입한 상상 속의 새로운 인종)도 기꺼이 환영할 수 있을 것 같다.”
-미래학에서는 향후 지구의 인구를 어떻게 예측하나.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누구도 미래를 예측(predict)할 수는 없다. 미래학의 본질은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대안적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선호되는 미래상(preferred futures)을 그려보고, 창조하며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하도록 도와준다.”
데이터 교수는 출산 감소로 인한 인구 감소, 이에 따라 달라질 미래 가족의 모습을 네 가지 유형으로 제시했다. 가상의 나라에서 수십년 뒤 나타날 수 있는 미래상(像)을 그려냈다. 그는 “미래학의 원리로 분석한 것이지 내 상상력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 미래상은 지금과 같은 지속적인 성장 모델을 유지할 경우다. 출산 장려 정책으로도 인구가 늘지 않아 외국인 이민을 수용한 결과 두 세대 만에 원주민이 소수민족이 되고 단일민족 국가가 다인종·다문화 국가가 된다. 둘째 미래상은 현재 시스템이 붕괴돼 새로운 체제가 들어올 경우를 가정했다. 지속적인 성장과 기술 진보에 의한 발전을 포기하고 농업으로 자급자족하다 보니 자녀를 많이 낳는다. 셋째 미래상은 생존을 위한 절제된 성장을 추구한다. 인구수를 늘리기보다는 생산성을 올리는 데 주력해 제조업에서 창조산업으로 이동한 경우다. 가정용 로봇이 가족의 일원으로 요리·청소·오락을 담당한다. 넷째는 완전히 변형된 사회다. 사람 외에 사이보그·외계인 등 다양한 생명체가 등장하고, 달·해저같이 새로운 공간으로 이주할 수 있는 경우다. 사람은 적응하지 못해 소멸한다.
-네 가지 중 당신의 선택은.
“어느 것도 아니다. 여러 대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선호하는 미래상은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 유형을 검토해 그 안에 있는 요소들을 결합해 한국인들이 창조해야 한다.”
-당신이 한국 지도자라면.
“완전한 식량·에너지 안보를 목표로 할 것 같다. 도시 사람들을 농촌으로 이주토록 하고 하이테크와 전통 방식을 결합해 농업을 발전시키겠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게 비용이 아니라 유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출산율이 다시 오를 수 있다. 현재 한국의 미래는 거의 대부분 외부적인 요인에 의존한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고 상품을 다시 해외로 수출해야 하는 경제 구조 때문이다. 이는 과거에는 탁월한 아이디어였는데 지금은 매우 위험하다.”
-왜 위험한가.
“한국의 발전 모델은 앞으로 세 가지 도전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이를 ‘삼위일체 쓰나미’라고 부른다. 값싼 석유 시대의 종말, 복합적인 환경 파괴, 글로벌 경제 붕괴 우려다. 석유는 한정된 자원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특히 영향이 크다.”
-정부 정책으로 출산율이 오를 수 있을까.
“금전적 장려금, 일·가정 균형 정책, 어린이와 양육 친화적인 사회 환경 조성 등 어떤 정책도 출산율 하락 추세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출산율 장려 정책과 출산율 상승 사이에 상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출산율을 높이는 게 어려운 이유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조차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은 1970년대 가족계획에 성공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당시 가족계획은 출산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산업화로 경제 구조가 변한 게 성공의 이유였다. 도시에서 자녀는 농촌에서처럼 경제적 효용이 없었다. 도시의 작은 아파트로 이주하면서 국민들은 스스로 자녀 수를 줄일 의지가 있었다.”
-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여성들에게 아이를 더 많이 낳으라고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이 하나가 엄마에게, 가족에게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도 말이다. 또 여성에게는 ‘성공한’ 아이를 길러야 한다는 추가 책임 부담도 어마어마하다.”
-인구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농촌 가정에선 다자녀가 부(富)와 안전을 의미하지 않았나. 결국 전체 경제 시스템이 출산에 유리하도록 바뀌지 않는 한 소수의 여성만이 자녀를 흔쾌히 많이 낳으려고 할 것이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짐 데이터=미국 하와이대 교수. 1959년 아메리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6년간 일본 릿쿄대에서 가르쳤다. 67년 버지니아공대에 미국 최초로 미래학 강의를 개설해 미래학 분야의 선구자로 불린다. 77년 『제3의 물결』의 저자 앨빈 토플러와 함께 대안미래연구소(IAF)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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