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겨울 밤에
울타리 없는 집의 창문이 등황색으로 따스하게 물들고
담장안의 미닫이에서도 불빛이 아끼듯이 새어 나오는 겨울밤은 깊어 갑니다.
긴 한 해의 수확 여정을 내려 놓고 눈오는 밤, 시골 창가에 마주하고 있을 그대를 생각합니다.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 것 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 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詩 > 농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식품 효능광고 잘못하다간 ‘낭패’ (0) | 2009.04.01 |
---|---|
백석과 겨울 농가이야기 (0) | 2008.12.07 |
귀농 생활의 지혜 상자 (0) | 2008.11.02 |
허브 농사로 부농이 된 이종노 이야기 (0) | 2008.09.11 |
행복한 고구마 대표 이정옥 회장 (0) | 2008.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