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마을의 식단은
이탈리아 사르데냐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일본 오키나와(沖繩)는 세계적인 장수촌이다. 지중해에서는 과일을, 오키나와 사람들은 등 푸른 생선과 삶은 돼지고기를 즐긴다. 한국 장수촌의 식탁은 소박한 ‘채소밭’이다. 한국 백세인들이 채소를 주로 먹고도 오래 사는 이유는 과일을 능가하는 채소의 특성 때문이다. 과일은 항산화(노화 방지) 역할은 하지만 발암물질 억제 효과는 없다. 반면 채소는 두 가지 효과를 다 낸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과일을 풍족하게 사 먹을 여유가 없었던 우리 백세인들이 장수하는 비결이다.
다른 나라에선 신선한 채소를 즐겨 먹지만 우리는 데친 채소를 좋아한다. 주로 나물로 무치거나 국을 끓여 먹는다. 생채소가 데친 것보다 건강에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질소비료를 사용해 재배한 채소엔 질산염이 다량 함유돼 있다. 이 질산염이 체내에서 헬리코박터균을 만나면 아질산염으로 변한다. 아질산염이 체내에서 2급 아민과 결합하면 강력한 발암물질인 니트로소아민이 생긴다. 2급 아민은 육류·어패류 등 고단백질 식품에 많다.
우리 연구팀(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이 채소를 데치는 실험을 했다. 그랬더니 1분도 안 돼 질산염의 절반이 사라졌다. 생채소에 열을 가하면 영양소가 파괴된다고 한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오래 데칠 경우에 한해서다. 1분 정도만 데치면 열에 매우 약한 비타민 C도 20%가량만 파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소를 1분가량 데쳐 살짝 숨을 죽인다면 영양소는 최소한 파괴하고 질산염을 줄여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일본 오키나와 밥상에는 돼지고기와 생선 같은 동물성 식품이 많이 오른다. 돼지고기에서 기름기를 빼고 먹는다. 지중해 발효식품으로는 양의 젖으로 만든 패타치즈가 거의 유일하다. 우리 백세인의 식탁엔 식물성 식품 일색이다. 김치·된장·고추장·청국장 등이 가득하다. 오키나와에도 발효식품이 별로 없다. 그 지역 노인들이 즐긴다는 쓰케모노(장아찌의 일종)가 있는데 이는 발효식품으로 보기 힘들다.
채식을 즐기다 보면 비타민 B12 결핍이 생긴다. B12는 세포 재생과 적혈구 형성 등에 필요한 영양소다. 이 대목에서 우리 백세인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발효식품이다. 콩·배추엔 비타민 B12가 없지만 이들을 발효시킨 된장·청국장·고추장·김치에는 풍부하다. 발효과정에서 생긴 미생물이 비타민 B12를 만든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1908~2009)는 “인류에는 날것을 먹는 그룹과 익힌 것을 먹는 부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우리처럼 삭힌 것을 먹는 부류가 있다는 사실을 스트로스는 몰랐을 것이다. 장수 연구 과정에서 밝혀졌다.
채식 위주의 한국 전통밥상은 장수식단으로 손색이 없다. 발효를 위해 소금을 많이 쓰고 칼슘이 부족한 점을 해결하면 된다. 모든 식단에서 소금의 양을 줄이고 우유와 육류를 섭취해 칼슘을 보완하면 누구나 백세인이 될 수 있다. 즐기는 술에도 차이가 난다. 지중해 장수 노인들은 포도주를 즐기지만 우리 백세인은 막걸리·소주파가 많다.
[J 스페셜 - 금요헬스&실버 중앙일보 201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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