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은 신초(神草)로 통하는 허브
중앙일보 입력 2013.01.31
인삼은 신초(神草·신의 풀)로 통하는 허브다. 『동의보감』엔 “사람 모양처럼 생긴 것이 약효가 좋고 오장(五臟)의 기(氣)가 부족한 데 주로 쓴다”고 쓰여 있다. 한방에서 인삼은 대표적인 보기약(補氣藥)이다. 두릅나뭇과(科) 인삼속(屬) 식물의 뿌리인 인삼은 재배지에 따라 고려인삼(한반도)·미국삼(미국·캐나다)·전칠삼(중국)·죽절삼(일본) 등으로 분류된다. 고려인삼과 다른 나라 삼은 마늘과 양파만큼이나 다른 식물이다. 약효는 물론이고 식물학상 분류로도 완전히 별개다. 고려인삼(진셍)의 학명은 Panax ginseng. 19세기 러시아의 식물학자 메이어 박사가 붙였다. ‘파낙스(Panax)’는 고대 그리스어의 ‘모든 것’을 뜻하는 ‘판(pan)’과 ‘약’을 가리키는 ‘axos’의 합성어로 ‘만병통치약’을 의미한다.
서양에선 인삼의 효과를 ‘ergogenic’이란 단어로 표현한다. 그리스어로 ‘일(ergo)’과 ‘생산(gen)’의 합성어다. 일할 수 있도록 육체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뜻이다. 인삼의 주된 건강 성분은 진세노사이드(사포닌의 일종)다. 5년근 이상의 뿌리엔 이 성분이 1∼2%가량 들어 있다.
‘인삼은 몸통이 크고 굵을수록 좋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령에 비해 크기가 너무 큰 것은 오히려 속이 무를 수 있다. 인삼의 웰빙성분인 사포닌은 몸통에 6.5%, 굵은 뿌리에 6.5%, 잔뿌리에 13% 들어 있다. 몸통과 잔뿌리를 함께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중앙포토]
● 명칭이 다양=인삼은 수삼·홍삼·백삼·흑삼 등이 있다. 수삼(水蔘)은 말리지 않은 생(生)인삼이다. 부패하거나 변질되기 쉬워 보관 기한이 길어야 1주일이다. 약효도 떨어진다. 인삼이 자체 함유한 여러 효소들에 의해 일부 성분들이 분해돼서다. 홍삼(紅蔘)은 증기 등을 이용해 4∼6년근 수삼을 껍질째 쪄서 말린 것으로 붉은 빛깔을 띤다. 인삼을 찌면 인삼의 전분이 풀처럼 돼 벌레가 덜 먹는다. 중국 황실에 상하지 않은 인삼을 선물하고 중국에 인삼을 수출하기 위해 홍삼이 개발됐다는 얘기도 있다. 홍삼은 수삼보다 효능이 더 뛰어나다. 찌고 말리는 도중 수삼엔 없던 사포닌·산성(酸性) 다당체 등 건강에 좋은 새로운 성분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사포닌은 수삼에 22종, 홍삼엔 34종 존재한다. 또 찌는 과정에서 수분이 제거돼 10년 이상 장기 보관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홍삼의 장점이다. 홍삼은 품질에 따라 천삼(1등급)·지삼(2등급)·양삼(3등급)으로 등급이 매겨진다. 절삼(2등분해 포장한 것)·미삼(잔뿌리로 만든 것)도 나와 있다. 백삼(白蔘)은 수삼을 익히지 않고 햇볕·열풍 등의 방법으로 말린 것이다. 수분 함량이 14% 이하여서 오래 보관할 수 있다. 흑삼(黑蔘)은 인삼을 아홉 번 찌고 말린 것으로, 이 과정에서 색이 검게 변한다.
● 5대 공인 효능=과거엔 인삼 7효설(七效說)이 민간에서 통했지만 현재 우리 정부(식품의약품안전청)가 공식 인정한 인삼·홍삼의 효능은 면역력 증진·기억력 개선·혈행(血行) 개선·피로 해소·항산화(抗酸化) 등 다섯 가지다. 인삼·홍삼 제품은 제품 라벨에 5대 공인 효능을 표시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 이런 효능은 대개 인삼·홍삼의 대표 건강 증진 성분인 진세노사이드와 폴리페놀(항산화 성분) 덕분이다.
여러 연구에서 인삼이 면역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면역력이 약한 300여 명에게 4개월간 인삼 추출물을 400㎎씩 매일 먹게 했더니 감기에 걸리는 횟수가 줄고 감기 증상이 완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암 등 암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홍삼을 매일 4.5g씩 6개월간 섭취하게 한 결과 T세포·NK(자연살해)세포 등 면역세포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있다.
인삼은 기억력을 되살리는 브레인 푸드(brain food)로도 유명하다. 농촌진흥청은 사람 대상 연구를 통해 인삼의 진세노사이드가 뇌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의 흡수를 도와 뇌의 혈액순환을 돕고 기억력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쉽게 피로를 느끼는 사람에게도 권할 만하다. 원기·활력을 높여줘서다. 면역력 증진이나 피로 해소 효과를 보려면 인삼이나 홍삼을 하루에 0.5∼5g(분말 기준)은 섭취해야 한다.
혈액 순환을 원활히 하는 데 필요한 홍삼의 하루 섭취량은 3g(농축액 등 추출물 기준) 정도다. 이는 20∼65세의 건강한 성인에게 매일 하루 3g씩 홍삼 농축액을 제공했더니 혈소판 응집이 현저하게 감소했다는 국내 연구 결과(인삼연구지 2007년 31권)에 근거한 것이다.
● 기대되는 비(非)공인 효능들=인삼은 요즘 비뇨기과·피부과·내분비내과·암 전문의사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남성 성기능장애·탈모증·당뇨병·암의 예방과 치료와 유용할 것으로 기대돼서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선 예부터 인삼을 정력제·최음제로 써왔다.
방탕한 생활을 하다 왕권을 빼앗긴 조선시대 연산군 시절엔 “장백산 인삼이 동이 나고 팔도(八道) 벌통이 텅텅 비었구나”란 민요가 유행했다. 연산군이 즐긴 ‘인삼정과’는 꿀에 재운 인삼이다. ‘인삼정과 없는 기생첩방’이란 속담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최근 국내에서 발기부전 남성 90명에게 홍삼을 3개월간(하루 1.8g씩) 복용하게 하고 변화를 관찰한 연구도 나왔다.
성교 횟수·조루 등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지만 발기의 강도·음경 내 혈류 흐름·성욕·만족도는 호전됐다. 홍삼이 비아그라처럼 음경 내 질소산화물(NO)의 생성을 증가시켜 발기력을 높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홍삼을 먹었다고 해서 비아그라처럼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인삼의 탈모 개선 효과는 사람 대상 연구에서도 확인됐다. 고려대 안산병원 피부과 손상욱 교수팀은 최근 발모 촉진 치료를 받고 있는 탈모증 환자 131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하루 3회, 매회 1g씩 홍삼 분말을 섭취하게 한 결과, 탈모 억제 효과가 입증됐다고 밝혔다(‘저널 오브 진셍 리서치·JGR’ 2012년 12월).
인삼엔 또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물질이 존재한다. 당뇨병 환자에게 추천하는 것은 이래서다. 인삼의 암 환자에게도 유용할 것으로 여겨진다. 사포닌과 폴리페놀(항산화 성분)이 들어있어서다. 이 성분들은 암세포의 증식을 막고, 암ㆍ노화의 주범인 유해(활성)산소를 없애며 질병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준다. 암환자가 인삼을 복용하면 방사선ㆍ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위암의 발병원인 중 하나인 헬리코박터균을 죽이는 데 인삼이 효과적이란 연구결과도 국내에서 나왔다.
● ‘찰떡궁합’ 식품들=인삼은 식전(食前)에 먹는 것이 원칙이다. 빈속에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은 식후에 먹어도 괜찮다. 궁합이 잘 맞는 대표적인 식품은 닭고기. 닭고기에 인삼을 넣으면 느끼한 맛과 누린내가 사라진다. 삼계탕(蔘鷄湯)의 원래 이름은 계삼탕이었다. 그러다 외국인들이 인삼의 가치를 인정하자 삼을 앞세웠다. 인삼은 해삼(海蔘)과도 잘 어울린다. ‘땅의 삼’과 ‘바다의 삼’을 함께 넣어 만들었다고 하여 양삼탕(兩蔘湯)이라고 불리는 음식이 있는데 한방명이 불로소양삼(不老燒兩蔘)이다.
‘꿀단지에 인삼 한 뿌리’란 표현이 있듯이 꿀과도 ‘찰떡궁합’이다. 꿀의 단맛이 인삼의 쓴맛을 덮어 먹기 좋게 해준다. 인삼의 쓴맛을 완화하는 것은 우유도 마찬가지다. 인삼을 꺼리는 어린이도 인삼 분말을 우유에 타 주면 잘 먹는다.
돼지고기와 함께 먹어도 좋다. 인삼의 쓴 성분이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없애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삼의 사포닌 성분은 열에 강해서 고기와 함께 구워 먹어도 좋다. 냄새가 강한 청국장에 홍삼 분말을 넣는 것도 효과적이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는 은은한 홍삼 향으로 바뀌고 영양은 배가된다.
● 다루는 법=흙이 묻은 수삼은 깨끗한 물에 10분가량 불린 뒤 흐르는 물에서 칫솔이나 부드러운 솔로 사이사이에 낀 흙까지 닦아낸다. 잔뿌리는 다듬어 인삼차·나물무침의 재료로 쓴다. 생으로 먹을 때는 가로로 둥글게, 구이를 할 때는 길고 얄팍하게, 나물무침·김치에 사용할 때는 어슷썰기나 채썰기, 삼계탕에 넣을 때는 통째로 또는 손으로 큼직하게 뚝뚝 분질러 쓴다.
수삼은 수분이 75% 이상이므로 상온에 두면 며칠 안 가서 곰팡이가 핀다. 수삼은 냉장고에 보관하되 부패하기 쉬우므로 구입 후 1주 내에 먹는다. 백삼은 건조한 곳에 보관한다. 농축액·분말 제품은 밀폐 용기에 넣어 어둡고 서늘하며 건조한 곳에 둔다.
인삼은 하루 1.5∼10g(최대 30g) 섭취하는 것이 적당하다(‘한국 생약규격집 해설’). 『동의보감』을 참고해 환산하면 인삼이 포함된 한약 1첩에 든 인삼의 양은 3∼4g. 보통 하루에 2첩을 복용하므로 인삼을 6∼8g 먹은 셈이다. 건강을 위해 먹는 홍삼의 하루 적정량은 3∼6g. 15세 미만의 어린이는 성인 복용량의 절반이나 그 이하를 복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 복용할 때 주의할 점=인삼은 혈액 흐름에 도움을 준다. 수술 후엔 피가 엉겨야 출혈이 멎고 상처가 봉합되므로 수술 받기 1주 전∼수술 후 1주는 인삼 섭취를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같은 이유로 항(抗)혈액 응고제를 복용 중인 환자에게도 인삼은 금기 식품이다. 인삼·홍삼을 복용한 뒤 드물지만 피부발진·설사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최고(수축기) 혈압이 180 이상인 고혈압 환자에게도 권장되지 않는다. 인삼이 카페인·정신병 치료제·스테로이드제·혈압약·당뇨병약·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 등의 약효를 지나치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카페인과 홍삼, 혈압약과 홍삼을 함께 먹는 것은 피하라는 말이다.
●도움말 주신 분 서울대 약대 박정일 교수, KGC인삼공사 안전성연구소 곽이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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