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사랑 홍삼
인삼은 이름도 많고 종류도 많다. 깊은 산 속에서 자생한 인삼은 산삼, 씨를 산에 뿌려 산삼처럼 자연 상태 그대로 재배한 인삼은 장뇌삼이다. 인삼을 캐낸 상태 그대로는 수삼, 수삼의 얇은 껍질을 벗긴 뒤 햇볕이나 바람에 건조한 것은 백삼, 수삼을 껍질째 쪄서 말린 것은 홍삼이라고 부른다. 이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삼은 바로 홍삼이다.
홍삼은 수삼을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땅에서 캐낸 수삼은 수분 함량이 75% 이상이기 때문에 장기 보관할 수 없다. 홍삼은 수삼을 수증기로 찌고 자연 건조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분 함량을 14% 이하로 줄여 만들어진다. 적갈색으로 변해 단단해진 삼은 길게는 20년까지도 보관할 수 있다.
1000년 된 홍삼 제조법
'쪄서 말리는' 기본적인 홍삼 제조법은 1000년 이상이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1123년 고려 인종 때 송나라의 사신을 수행해 개성에 왔던 서긍(徐兢)은 송나라로 돌아가서 고려의 생활상을 기록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책을 썼다. 여기에 벌써 홍삼의 제조법이 기록돼 있다.
결국 저장을 위해서 고안된 인삼이 바로 홍삼인 셈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하고 하니 인삼에 큰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홍삼 성분은 크게 사포닌과 비(非)사포닌으로 구분된다. 각종 장기 보호, 기억력 개선 효과, 암세포 억제 기능 등 한두 마디로 쓰기 힘든 인삼의 효능은 이 두 가지 계열 물질이 얼마나 다양하게 있는지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그런데 이 중 사포닌은 인삼의 표피에 많고, 중심의 목질부에는 많지 않다. 한국인삼공사에 따르면 홍삼에 들어 있는 사포닌의 종류는 백삼의 1.5배에 달한다. 여기에 찌고 말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종류의 사포닌이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고려인삼'으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 한국 인삼은 그 자체가 다른 나라의 삼에 비해 사포닌 종류가 많다. 서양 인삼의 2.6배, 중국 인삼의 2.2배에 달한다. 고려인삼으로 세계에 알려져 있는 이유는 고려시대에 수출되기 시작한 인삼의 인기가 워낙 좋았기 때문이다. 1910년 한·일 강제 병합 이후에 조선총독부는 인삼 전매 사업을 관장했고, 일본 무역회사들은 1년에 인삼 2만~3만근을 홍콩이나 중국으로 수출했다.
한때 생산 끊겼던 인삼
문제는 6·25전쟁 이후 인삼 경작지나 기반 시설이 대부분 파괴된 것이다. 조금씩 경작지가 늘어났지만 생산이 거의 안 됐던 시기는 1950년 이후 1960년대까지 10년이나 됐다.
홍삼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홍삼 전매제도가 폐지되고 홍삼 시장에 경쟁이 생기지 시작한 뒤다. 특히 1999년 출범한 한국인삼공사가 2004년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하면서 홍삼은 전 국민의 건강 기능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인삼을 뿌리째 먹던 시절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데에는 한국인삼공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홍삼캡슐, 홍삼분말, 홍삼차 등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면서 편하게 홍삼을 먹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2000년대 넘어서서 한국인삼공사의 수출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1999년 한국인삼공사의 수출은 598억원이었으나 작년엔 1000억원을 넘어섰다. 판매되는 국가는 60개 국가다.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가장 많이 팔린 상품 순위 3위는 정관장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은 한 번에 500만원씩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10월 중국 국경절 휴가 기간의 정관장 매출은 작년보다 42%나 증가했다.
한국인삼공사의 가장 큰 수출 시장도 중국. 그러나 최근에 인삼공사는 중동·동남아시아 시장도 뚫고 있다. 한국인삼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중동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특히 인삼 음료가 중동인의 입맛에 잘 맞아 반응이 좋은 상황이다. 동남아 시장도 이미 고려인삼을 잘 알고 있는 화교들이 많다는 점이 강점이다. 한국인삼공사 관계자는 "매년 개발 비용으로 200억원을 쓰고 있다"며 "각 지역에 현지화한 제품을 만들어 세계적인 명품 인삼의 위치를 다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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