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진 땐 맨 앞 승전 보고서엔 부하
[중앙일보] 입력 2014.08.
헌신·겸양의 리더십-"하늘이 도왔을 뿐" 스스로 낮추고 공적 기록할 땐 종들도 안 빠트려
전사자 집엔 제사용 쌀까지 보내 겁쟁이였던 병사들, 목숨 걸고 싸워
“흐리고 비가 내릴 듯했다. 홀로 배 위에 앉아 있으니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눈물이 났다. 천지간에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있으리오. 아들 회가 내 심정을 알고 매우 괴로워했다.”
이순신이 명량해전(1597년·선조 30년) 5일 전에 쓴 일기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이순신은 고립무원의 처지였다. 엄청난 중압감과 격무로 토사곽란에 시달리다가 인사불성이 되기도 했다. 일기에는 “새벽 2시경부터 토하기를 10여 차례 하고 밤새도록 앓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심지어 바로 밑의 장수인 경상 우수사 배설은 겁이 나 도망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선 그도 좌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엄습한 두려움과 근심을 딛고 명량대첩을 치른 그는 『난중일기』에 “이번 승리야말로 천행(天幸: 하늘이 내린 행운)”이라고 썼다. 갖은 악조건에서 목숨까지 아끼지 않은 솔선수범, 뛰어난 리더십과 전략으로 큰 승리를 이끌어 냈지만 모든 공을 하늘에 돌린 것이다.
이순신은 수많은 적선이 침입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부하들을 모아 놓고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는 자세로 싸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실제 전투에서도 맨 앞에서 싸웠다. 그러나 이순신이 탄 배를 제외한 나머지 배들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일기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탄 배가 홀로 적진 속으로 돌진해 들어가면서 각종 총통들을 마구 쏘아 대니 그 소리가 마치 우레 치듯 하였다. 그러나 적선들이 여러 겹으로 둘러싸고 있어 내 배에 있던 부하들은 서로 돌아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여러 장수들의 배를 돌아보니 그들은 먼바다에 물러나 있으면서 바라만 보고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순신은 자신이 앞장서 겁에 질린 부하들의 동참을 이끌어 냈다. 그는 또 지형과 해류를 이용하는 전략과 전술로 기적과 같은 승리를 이뤄 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스스로를 낮췄다. 이순신은 “나는 나라를 욕되게 했다. 오직 한 번 죽는 일만 남았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책임의식이 강했다.
또 부하들을 무척 아꼈다. 전쟁에서 희생을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부하들과 활쏘기 연습도 같이하고 글을 가르쳐주었으며, 술도 같이 마시며 위로하고 씨름대회도 자주 열었다. 죽은 부하들도 잊지 않았다. 그들의 시체를 거두어 고향에 묻히도록 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쌀을 보내 주기도 했다. 또한 죽은 부하들의 합동제사를 주관하고 제문을 손수 쓰기도 했다. 이 제문에는 승리의 공을 부하들에게 돌리는 겸양의 미덕이 잘 드러나 있다.
임금에게 승전보고서를 올릴 때에도 부하의 공을 앞세웠으며, 심지어 종들의 이름까지도 적었다. 이에 따라 부하들은 마음속 깊이 이순신을 존경하고 목숨도 아끼지 않고 열심히 싸웠다. 이순신이 보여준 겸양의 미덕이 어부·농부·종들로 이루어진 우리 수군을 무적함대로 만든 밑거름이 된 것이다.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짐 콜린스는 경쟁기업을 압도하는 탁월한 성과를 내고 이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위대한 기업을 만든 리더들의 공통점을 연구했다. 그에 따르면 이 리더들은 뛰어난 업무능력, 팀워크 능력, 관리자로서의 비전 제시 및 동기부여 역량은 물론 ‘헌신과 겸양의 미덕’이 있다고 한다. ‘헌신과 겸양의 미덕’이 있어야 가장 높은 단계인 5단계 리더가 될 수 있으며, 이러한 리더들이 위대한 기업을 만든다고 했다. 5단계 리더들은 불굴의 의지로 헌신적으로 일을 해 엄청난 성과를 올린다. 그리고 그 공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거나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겸손해한다는 것이다.
세계 해전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전과를 거두고도 모든 공을 부하들과 하늘에 돌리는 겸양의 미덕을 보여준 이순신은 5단계 리더의 표상이다.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리더뿐만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밀도 있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구성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헤아리고 그 공적을 구성원들에게 돌리는 것에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
감수할 위험, 피할 위험 철저 구분 … 왕의 명령도 안 통했다
이순신은 전라좌수사 임명 즉시 병력 충원과 훈련, 무기 제조와 군수물자 확보에 매진했다. 임란 하루 전에는 화포의 시험발사에도 성공해 거북선 개발을 완료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적의 공격에 더욱 철저히 대비했다.
유성룡이 남긴 『징비록』에는 달 밝은 밤 이순신이 적의 야습을 예측하고 엄한 경계를 명했으며, 그날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자 “여러 장수들이 이순신을 신으로 여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순신은 진중에 있을 때 주야로 엄히 경계하여 한 번도 갑옷을 벗은 적이 없었다. … 많은 적선들이 어두운 산 그림자 속을 거쳐 쳐들어 왔으나… 적은 우리를 범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부하들은 달이 매우 밝아 적의 기습은 없을 것이라고 방심했지만 이순신만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적의 기습 가능성을 하나하나 검토하고 대비했다. 달빛이 밝아도 달이 기울며 산 그림자가 드리우니 이 틈을 타 적이 기습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순신은 옥포·한산도·부산·명량·노량 등 수많은 해전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항상 우리 수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승리했다. 그는 패배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공격은 하지 않았다. 임금인 선조가 적의 소굴로 쳐들어가라고 명했지만 이를 따르지 않았다. 1594년 9월 3일의 일기다.
“새벽에 밀지(密旨: 임금이 비밀리에 내리는 명령)가 왔다. 임금께서 ‘수륙 여러 장수들이 팔짱만 끼고 서로 바라보면서 한가지라도 계책을 세워 적을 치는 일이 없다’라고 하셨지만, 3년 동안 해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여러 장수들과 함께 죽음을 맹세하고 원수를 갚으려고 하루 하루를 보내지만 적이 험난한 소굴에 웅거하고 있으므로 경솔히 나가 칠 수는 없다.”
이후에도 또다시 선조가 공격을 명했으나 이순신은 따르지 않았다. 이것이 빌미가 돼 감옥에 끌려가고 백의종군이라는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이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임금의 명에 따라 무모하게 공격하다가 우리 수군은 괴멸당했다.
이순신은 위험을 회피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죽음의 위험까지 감수하겠다고 나섰다. 명량해전 직전에 이순신이 12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에 달하는 적선의 침입을 저지하려고 하자, 임금은 수군을 없애고 육군에 합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순신은 다음 같은 글을 임금에게 올렸다.
“만일 지금 수군을 없앤다면 적이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이며, 적은 호남과 호서의 연해안을 돌아 한강으로 올 것입니다. 신은 이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순신은 기피해야 할 위험과 감수해야 할 위험을 정확히 구분했다. 『손자병법』에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말이 있다. ‘미리 이겨 놓고 난 후에 싸운다’는 뜻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싸움 전에 미리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순신은 미리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전투에 임했기에 연전 연승할 수 있었다.
이순신은 지형·조류 등 지리적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명량해협의 좁은 물목인 울둘목을 전투장소로 택했다. 일본 전선 중 가장 크고 전투력이 강한 안택선은 직접 전투에 나가지 못하고 규모가 작은 관선 133척만 참여할 수 있었다.
또 이순신은 좁은 물목을 간신히 빠져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일본 군선들에 화포를 집중하고, 명량해협의 빠른 조류도 적극 활용해 대승을 거뒀다.
임진왜란은 조선·일본·중국이 7년 동안 싸운 처절한 전쟁이다. 조선 산하는 쑥대밭이 됐다. 이순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조건에서도 빈틈없는 자세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헤쳐나갔다. 그가 보여준 위기관리 리더십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사례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다. 지능지수(IQ)·감성지수(EQ)뿐만 아니라,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끈질기게 노력하는가를 나타내는 역경지수(Adversity Quotient·AQ)가 높은 리더가 요청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이순신이 보여준 높은 역경지수, 위기대비 태세, 리스크 평가와 위험감수(calculated risk-taking), 선승구전 전략, 희생정신을 벤치마킹해야 할 시기다.
지용희 교수
◆지용희(71)=세종대 석좌교수. 이순신리더십연구회 이사장. 한국경영연구원 이사장. 저서 『경제전쟁시대, 이순신을 만나다』 『중소기업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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