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우리 함께 잘 살아보세’
최경환/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0여년 전 어느 모임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에서 물러나 귀농한 어느 분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FTA가 체결되면 우리 농업은 끝장이라고 온통 난리인데, 막상 시골에 내려가 보니 너무 조용해 의아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한·칠레 FTA가 체결될 무렵이었다. 어느 전쟁이든 대비하기 위해서는 적의 침략 시 대책을 다방면으로 강구하는 한편 적이 쳐들어오면 반드시 물리치겠다는 전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우리 농촌은 무방비 상태인 것 같더라는 얘기였다.
우리 농촌은 젊은이는 다 떠나고 노인들만 있어 마을 전체가 고령화돼, 활력도 희망도 없다고 보는 비관적인 견해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따라서 농촌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부나 타인의 도움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농촌이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외부의 도움은 일시적 일회성에 그칠 뿐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1960~19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에 우리 농촌에는 활용할 만한 자원이 거의 없었다.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자마자 6·25전쟁으로 온 국토가 초토화됐고 폐허 위에 남은 것은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뿐이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게 한 것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신념 하나였다. 가진 것은 없었지만 모두가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뭉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으며, 오늘날 경제 발전의 기틀을 구축했다. 이러한 새마을운동의 ‘잘 살아보세’는 요즈음 외국에서 벤치마킹 모델이 돼 많은 국가들이 배워가고 있다.
현재의 우리 농촌은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와 비교하면 풍요롭다. 지역마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물적 자원도 있고 사람도 있다. 여기저기 희망의 싹도 움트고 있다. 연간 억대 수입을 올리는 젊은 농업인이 늘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힘을 합쳐 활력을 찾아가는 마을도 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해보지도 않고 좌절하는 패배의식, 반목과 갈등도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귀농·귀촌을 보기로 하자. 현재 베이비붐 세대를 주축으로 귀농·귀촌이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장려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농촌에서는 귀농인이 앞장서서 마을 주민과 함께 마을 발전을 위해 일자리와 소득을 창출하여 활기를 되찾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주민이 귀농인을 배척하거나 반대로 귀농인이 주민을 무시해 서로 반목과 갈등으로 분위기가 어수선한 마을도 있다.
밀려오는 FTA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마음과 힘을 한데 모아 합심전력(合心全力)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 반목과 갈등으로 허송세월할 여유가 없다.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12척의 배’가 아니라 12척의 배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도 대내외 여건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농촌이 활력을 되찾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우리 함께 잘 살아보세(FTA:Fighting Together Again)”를 외치는 파이팅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