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둘러싼 현무암지대
가깝고도 먼 곳에 있는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남북분단 이후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지질학도가 학술조사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몹시 설레였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에서 이른 아침에 중형버스를 타고 비포장 도로를 약 10시간 덜컹대며 백두산을 향하여 남서쪽으로 약 2백70㎞를 달렸다.(그림1)
(그림1) 백두산 일대
백두산은 넓고 두꺼운 현무암대지(玄武岩台地)와 경사현무암고원이라는 자애로운 어머니 등에 업혀서 우뚝 선 아들같은 산봉우리이다. 백두산은 행정구역상으로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군과 중국의 길림성 안도현 이도백하진(鎭)의 국경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선구자」의 배경, 현무암 용암대지
연길에서 20여㎞를 달리자 선구자의 해란강과 일송정으로 유명하고 민족시인 윤동주의 고향인 용정(龍井)에 들어선다. 용정에 들어서자 벌써 주위의 지질은 현무암의 용암대지(熔岩台地)가 펼쳐져 있다. 일제 지배하에서 조국해방을 위해 말달리던 선구자의 모습이 이를 배경으로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하다.
만주지방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는 장백산맥의 일부인 이 현무암대지는 해발고도가 약 1천m 정도이며, 상대적인 고도변화는 약 2백m 내외이다. 현무암대지는 장백산(백두산) 자연보호구 관리국이 있는 이도백하(二道白河)까지 약 2백㎞ 연장된다.
이 현무암대지는 지금부터 약 1천9백90만년 전부터 3백10만년 전까지, 지질시대로는 신생대 제3기말에 약 여섯번에 걸친 화산활동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다. 이 화산활동은 지하 62~67㎞ 깊이인 상부맨틀 암석중에 있는 포타슘, 루비듐과 우라늄 같은 방사능 원소들이 붕괴되면서 발생하는 열에 의하여 암석들이 부분적으로 녹아서 만들어진 1천~1천2백℃의 용융물질에 의한 것이다. 그후 이들 용융물들은 압력이 낮은 곳인 지구껍데기 쪽으로 상승하여 지하 3~5㎞의 마그마 챔버(chamber)에 모였다가 자체 압력을 견디다 못하여 열곡(裂谷)같은 깊은 틈새를 통하여 흐름성이 강한 현무암 용암을 오랜 시간적 차이를 두고 여러번 분출시킨 것이다.(그림2)
(그림2) 백두산 형성사
이때 흐름성이 좋은 염기성 현무암 용암들이 약 2백~3백㎞ 흘러내려 냉각응결되어 원래의 화강편마암의 지형을 덮어버리고 넓은 현무암대지를 이루었다.
이 용암대지의 분포범위는 약9만㎢이며 5분의 1 정도가 북한쪽에 깔려있어서 개마고원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나머지 대부분은 조선족자치주인 길림성 안도현에 분포한다. 이 대지는 방패를 엎어 놓은 듯한 평평한 지형을 보이며, 용암들이 흘러 식으면서 가스들을 배출시킨 구멍이 많은 기공상(氣孔狀)을 가진 녹흑색 현무암들로 구성되어 있다. 현무암대지의 평균 두께는 약 2백~4백m이다. 이 현무암대지 위에는 옥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백두산의 입구이며, 자연보호구 관리국과 박물관이 있고 미인송(美人松)으로 이름난 해발 8백m의 이도백하를 떠나서, 또다시 남쪽으로 차를 몰면 차창옆으로는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많은 침활엽수의 원시림이 나타난다.
키큰 원시림 사이로 쭉 곧게 뻗은 현무암층으로 이루어진 화산지대 특유의 검은 비포장길을 먼지를 날리면서 약 30㎞ 올라가면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장백산 세계 자연보호 구역'이라고 쓴 대형 가로 시멘트판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백두산인가 보다'하고 사슴처럼 목을 길게 빼어 보면, 백두산의 웅장한 자태는 보이지 않고 시야는 온통 원시림으로 막혀버린다.
다시 4㎞ 정도 올라가면 고도 1천2백m지점에 장백산(長白山), 천수(天水), 운봉(雲峰)이라고 쓰여진, 입산허가를 관장하는 높다란 기와지붕으로 된 건물이 나온다. 입산허가를 받고 평균 경사 10˚정도(8도~12도)의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길을 약 20㎞올라가면, 비포장길은 세갈래로 나눠진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백두산의 신비롭고 웅장한 자태와 장백폭포가 멀리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서히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1천8백m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약 10㎞ 올라가면 백두산의 변화무쌍한 기후를 관측하는 기상대와 천지가 나오는데, 정상까지는 걸어서 약 3시간, 자동차로는 40여분 걸린다. 또한 곧바로 올라가면 온천과 장백폭포를 지나 천지호수면으로 올라갈 수 있다.(그림3)
(그림3) 백두산 등산로
이도백하에서 삼거리까지, 약 55㎞를 이루는 경사 현무암 고원은 제3기말인 지금부터 2백90만년 전에 틈새(裂隙) 분출에 의하여 생긴 기공상 녹회색 알칼리 현무암이 약 4백70m 두께로 덮여 있다. 이들 현무암대지와 경사현무암고원의 화산 폭발 특징은 분출물질이 많고 분출속도가 느렸다는 점이다. 또한 분출지점은 길고 깊은 틈새이다.
하얀 머리「백두」
해발고도가 1천8백m 이상이 되면 눈앞에는 장엄한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체가 급격사이고 경사도는 평균 35~40˚이다.
백두산은 제4기 지질시대 동안인 약 61만~21만년 전, 13만년 전 그리고 10만~9만년 전에 3번에 걸쳐서 흐름성이 약한 알칼리 조면암, 유문암과 알칼리 현무암이 번갈아 중심분출되어 만들어진 산이다.
제4기 화산활동이 백두산의 밑바닥을 이루는 제3기 현무암들의 화산활동과 구별되는 점은, 폭발력이 큰 산성용암을 분출한 점이다. 산성용암의 두께는 약 6백50m이다.(그림2)
이런 산성 마그마는 점성이 크고 멀리 흘러 내리지 못하여 화구(火口) 가까이에 층층이 뭉쳐 쌓여 두꺼워지면서 나중에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층상의 화산추(火山錐)를 형성하였다.
백두산을 이룬 화산활동의 나이는 암석 속에 있는 동위원소인 포타슘40이 아르곤40으로 일정한 반감기를 가지고 붕괴되는 점을 이용하여, 붕괴산물의 질량을 분석하여 계산하면 정확히 알 수 있다.
백두산에는 1년중 9월말에서 6월중순까지 거의 9개월 동안 눈이 쌓인다. 기온은 최고 20℃에서 최저 영하 40℃의 큰 기온변화를 보이며, 연평균 기온은 6℃이다. 눈이 오지 않는 3개월 중에도 쾌청한 날은 1년중 10여일 정도이고 그 나머지는 안개끼고(多霧), 비오고(多雨), 구름끼는(多雲) 삼다(三多)의 날씨를 보인다.
고도 1천8백m에서 2천1백m까지는 기공이 많은 현무암, 화산재(灰)가 뭉쳐진 응회암과 표면이 꺼칠한 조면암이 흘러 내려온 흔적이 잘 나타난다. 2천1백m 이상부터는 경사가 더욱 급해지며 바람부는 방향으로 비비틀린 자작나무들은 백두산 꼭대기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의 방향을 말해준다. 거센 바람에 더이상 견디지 못한 난장이 관목과 들국화같은 야생화들은 땅바닥을 기듯 모질게 자라고 있다. 여기가 이 높이 이상 나무들이 못사는 수목한계선인 듯하다.
2천1백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움푹 들어가서 웅덩이가 된 V자형 계곡이 보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은 빙하의 깎임작용에 의한 빙하지형임을 알 수 있다.
해발 2천1백m에서 2천4백m까지는 산성용암이 흘렀던 유동구조를 잘 보여주는 유문암질암(流紋岩質岩)과 안산암질 조면암이 나타난다.
더욱 올라가서 고도계가 해발 2천5백20m를 가리키는 지점에서 약 3m 두께의 부석부석한 응회암층이 발견됐는데, 지표에서 약 2m 정도 깊이에서 가로 10㎝, 세로 6㎝정도 되는 얼음덩이들이 5개나 박혀 있었다. 이때 바깥 기온은 15℃였다. 백두산 기슭의 얼음덩이들은 얼음인 상태로 금년 여름을 지낼 만년빙(萬年氷)인 듯하다.
백두산 기상대를 뒤에 두고 천지로 향하면, 벌써 가파른 산등성이에는 회백색 백색 미황색 및 회흑색 등의 둥글둥글한 부석(浮石)들이 널려 발뿌리에 채인다. 이들 부석들은 가스가 많고 폭발력이 큰 화산에서 볼 수 있는데, 화산분출의 마지막 시기에 나타나는 화산재들이 뭉쳐져서 백두산 주변 지대를 덮은 것이다. 이 암석은 밀집한 기공으로 이루어져 마치 솜덩어리 같이 몹시 가벼워 물에 뜨기 때문에 부석이라고 부른다.
이 산은 거의 사계절 동안 흰눈을 머리에 이고 있을 뿐 아니라 흰색의 부석들이 덮고 있어 언제나 희게 보인다는 뜻에서 예로부터 백두산이라고 불러왔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병풍들
드디어 하늘아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호수인 천지(天池)가 눈앞에 펼쳐졌다. 백두산 꼭대기에서 푸른하늘에 비낀 심오한 천지를 내려본다. 화구가 용암절벽 밑으로 푹 내려 앉아 생긴 타원형 호수를 중심으로 깎아내린 듯한 절벽들이 마치 병풍으로 둘러세운듯이 감싸고 있다. 고도 2천5백m 이상되는 20여개의 외륜산(外輪山)중에 16개의 기기묘묘한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16개 연봉중에서 7개는 북한 국경안에 있다.
수년전 중국 공산당 실력자 등소평이 앉아서 사진 찍었다는 현무암질 화산암 바위덩이를 중심으로 왼쪽은 백암봉(2640m)이며, 오른쪽으로 천문봉(2670m), 용문봉(2595.7m), 지반봉(2603.1m), 백운봉(2691m)과 옥주봉(2662.3m)이 보인다.(그림3)
백운봉은 백두산의 중국령(領)에서 최고봉이며 산꼭대기에서 천지수면까지는 약 5백여m이다. 백운봉은 대체로 산세가 거대하고 꼭대기는 평평한 반석같이 기세가 웅장하다. 유문암질암과 부석들로 구성되어 있다.
백두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백두봉(장군봉 또는 병사봉이라고 함)은 2천7백49.2m로서 북한 영토로 되어 있다. 천지의 남쪽 5분의 3은 북한 소유이고 북쪽 5분의 2는 중국령으로 속해 있다.
화산활동의 산 증거, 부석
천지주위의 16개의 봉우리들은 수려한 기봉들이 마치 용왕을 지키는 장수처럼 위세당당하게 솟아 있다. 용암이 분출된 후에도 화산재들이 다량의 가스를 포함하고 있다 방출한 것이 화구주위에 뭉쳐 층층이 쌓여서 기공(氣孔)이 많은 부석을 이루었다.
화산재들은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어서 중국의 동북부, 멀리는 동쪽으로 일본 '아오모리'현 이북과 홋카이도 '이시끼리' 남부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서, 화산폭발 당시 편서풍 또는 남서풍이 불은 것으로 예측된다. 일본에서 발견된 화산재의 연령은 8백년 내지 9백년으로 밝혀졌다.
이 부석은 양적으로 적으나 산포된 범위는 대단히 넓고 그 분포상태는 일정하지 못하다. 가장 두껍게 분포된 곳은 천지 화산구 주위에 있는 각 봉우리들. 어떤 부석은 두께가 40m에서 60m인 것도 있다.
백두산의 머리에 두껍게 분포하는 이들 부석들은 백두산 화산활동의 가장 마지막인, 인류 역사시대(1400년전, 1000년전, 300~400년전)의 3번에 걸친 분출에 의한 결과이다.
이조실록(李朝実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선조 30년인 1597년 8월26일, 온세상을 뒤흔드는 폭음이 났고 연기가 하늘을 가렸다. 많은 돌멩이가 하늘을 돌아다니면서 연기와 함께 산넘어로 넘어갔다. 그와 동시에 천지 부근에는 지진이 일어나 많은 붉은 흙탕물(紅色泥水)을 분출했다."
"현종 9년 1668년 4월, 백두산지구에 잿비(灰雨)가 내렸으며 그 규모는 비교적 작았다."
"숙종 28년 1702년 4월14일, 점심 때 천지가 갑자기 캄캄해진면서 황적색 연기를 내품었다.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그 열기가 난로열 같았다. 더운 열기가 확 풍겨왔으며 새벽이 지나서야 사라졌다."
이러한 기록으로 보아 지질학적으로 최근 세차례의 화산활동 규모는 모두 작은편이었으며, 화산재 수증기 이산화탄소 유화수소 아황산가스 염화수소 등의 기체들이 분출되었을 뿐이라고 추측된다. 이들 화산재가 쌓여 뭉쳐지고 그 속에 잡혀있던 가스들이 빠져 나가버린, 기공이 많은부석들은 각광받는 자원으로 홍콩으로 수출된다고 한다.
특히 백두산 천지에서 북동쪽으로 45㎞ 정도 떨어진 하늘아래 첫마을인 내두산(奶頭山) 조선족 마을에서는 노천에서 삽으로 부석을 캐어서 t당 280원(元) (중국 일반 공무원 2달 월급이며, 1元은 2백원 정도임)의 원산지 가격으로 팔린다는 것. 이 부석들의 용도는 고층건물의 천연 경골재(輕骨材), 방열내화재 방음재 연마재 공예품제작 또한 바다 석유오염 제거재 등으로 유용하게 쓰인다.
내두산 조선족 마을의 노천 부석채광장에서는 지표 약 1m의 부석층 밑에 폭이 2m나 되는 탄화목 덩이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곳의 탄화목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탄소14 동위원소법에 의한 연대측정 결과 1050±70년과 1120±70년으로 밝혀졌다. 이들 탄화목들은 나무의 연소점을 초과하는 뜨거운 화산재가 나무들이 채 타기도 전에 계속 떨어져서, 온도가 높은데 산소가 결핍되어, 타던 나무가 탄화목으로 된 것이다.
다시 백두산 천지주위의 부석들에 눈을 돌리면, 대부분의 부석들은 폭발성이 강한 산성 마그마로 색깔은 회백색과 미황색이다. 일부는 현무암질 염기성 마그마 분출과 연관있는 회흑색 부석도 있으며 흑요석도 일부 발견된다.
특히 백암봉, 천문봉과 백운봉을 이루는 회백색 및 미황색 부석들은 천지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경사지게 분포되어 있었다. 하부에 먼저 굳어 있던 현무암, 조면암과 안산암들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화산재에 의하여 상부로 이끌리어 화구 가까이까지 나와 있다.
이들 각(角)이 진 포획된 암석들의 크기는 제일 큰 것이 가로 1m50㎝, 세로 80㎝. 크기는 다양하며 일정한 방향성은 없으며 평균적인 크기는 20㎝×10㎝이다.
70% 강수, 30% 용천수
매부리 같이 생긴 천문봉(2670m)쪽에서 경사 70˚의 가파르고 미끄러운 비탈을 가재걸음으로 천지 수면쪽으로 내려가노라면 몸이 천지 속으로 빨려드는 듯하여 식은 땀이 난다. 천지 수면의 넓이는 21.41㎢, 수면둘레 13.11㎞, 남북거리 4.85㎞, 동서거리 3.35㎞, 가장 깊은 곳 3백83m, 평균 수심 2백13m이며 호수면 해발고도는 2천1백55m이다. 천지의 연평균 기온은 9℃.
천지 수면 가까이 이르면 달문과 팔괘묘가 있는 천지반도가 나타난다(그림3). 여기에서는 백운봉기 알칼리질 부석 분출 이후인, 1천년 전의 팔괘묘기 화산활동의 산물을 볼 수 있다.
이 천지반도는 장백(비룡)폭포에서 천지수면으로 올라가서 천지 북쪽 호수물이 흘러나가는 어귀에 우뚝 솟아있으며 그 높이가 약 50m쯤 된다. 화산분출물로 굳어진 암석은 흑색과 암갈색의 응회암, 응결응회각력암과 화산쇄설집괴암 등. 약 50m 두께로 쌓여있다. 크기가 다양한 화산각력암과 화산재가 함께 고결되어 있어 암석 속의 빈 구멍이 많다. 이 때문에 망치로 치면 '둥둥'북소리가 난다. 암석은 손으로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무르다.
천지의 수면은 매우 평온하며 수심의 변화 진폭은 평균 1.2~1.7m이고, 총 저수량은 20억t이다. 천지의 물은 70%가 강수(降水)이고 30%는 용천수이다. 이 물은 천지반도를 거쳐서 북쪽의 장백폭포쪽으로 흘러서 제2송화강, 남쪽의 지하공동으로 빠져서 압록강, 그리고 동쪽 호수 밑으로 흘러서 두만강의 원류가 된다.
천지반도에서 장백폭포를 거쳐서 소천지 쪽으로 내려가는 북쪽 계곡은 지질구조적으로 약한 약선대(弱線帶)이며, 빙하삭박에 의하여 생긴 깊은 계곡이다.
지금부터 약 61만년 전부터 최근 역사시기까지 6번에 걸친 화산분출은 백두산을 하늘 끝까지 우뚝 솟아 올려놓았다. 더욱 백두산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제4기 지질시대 동안의 5번 빙하작용 때문이다. 이는 대장장이가 명검(名劍)을 만들 때 하던 담금질에 비유된다. 특히 북한령의 천지 안쪽 남사면은 험준한 낭떠러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빙하의 깎임작용에 의한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장백폭포의 생성 과정
천지호수가에서 장백폭포까지의 거리는 약 1.2㎞이다. 호수물이 흐르는 골짜기는 V자형으로 처음에는 넓다가 폭포 가까이 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이 골짜기의 양편에 있는 산봉우리는 동쪽이 천문봉이고 서쪽이 용문봉이다. 이 깍아세운 듯한 산봉우리에는 백두산 용암이 흘러내렸던 방향의 수직으로 기둥모양의 주상절리(柱狀節理)가 잘 나타난다.
천지에서 흐르는 물은 처음에는 조용히 그리고 유유히 흐르다가 경사가 큰 곳에 이르면 갑자기 격류로 변하여, 돌연히 나타난 낭떠러지에서 곤두박질치면서 68m의 큰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거의 수직을 이룬 장백폭포의 암석은 알칼리 조면암들로 이루어져 있다. 폭포의 생성은 아마 주상절리와 더불어 빙하작용에 의하여 형성된 것 같다.
겨울철에는 천지의 호수면은 얼어붙지만 장백폭포수는 장엄하고 의연하게 떨어져 내린다. 폭포의 전체 폭은 약 2.5m이고 처음에는 5줄기 그리고 4줄기가 되다가 나머지 구간은 거의 3줄기의 물기둥이 되어 떨어진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우람한 폭음은 산골짜기를 진동시키고, 떨어지는 물은 희고 기다란 비단필을 드리운 듯 급경사인 화산암 계곡을 물거품으로 뒤덮으며 요란하고 도도하게 흘러내린다.
장백폭포에서 온천들이 많다는 폭포 밑까지 우회하는 길은, 주상절리로 인하여 떨어진 조면안산암과 조면암 돌조각들(탤러스)이 너무 많아 엉금엉금 기어서 통과해야 한다. 돌이 자꾸 구르기 때문에 여러명이 한꺼번에 오르내리기는 어렵다.
1백여개의 온천군(群)
장백폭포를 뒤로 두고 6백m 정도 걸어 내려오니, 길 오른쪽에 해발 2천m되는 곳에 가마솥처럼 수증기가 뭉게뭉게 뽀얗게 피어오르고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속이 아직도 뜨거운 '백두산의 땀구멍'들인 온천샘 구멍에서 펄펄 끓는 뜨거운 온천수가 올라오고 있다. 알칼리 조면암으로 된 백두산 기슭의 온천주위는 유황과 철분으로 인하여 온통 노랗고 붉게 착색되어 있다. 어떤 이들은 쪼그리고 앉아서 최고 온도 82℃나되는 온천수에다 계란을 삶아 먹고 있다. 이 온천은 남지(男池), 여지(女池)로 구분되어 있으며, 나무지붕과 칸막이만 겨우 있는 온천장으로 입욕료는 1원(元)이다. 온천 바로 옆에는 철분과 탄산이 많은 광천수가 나오고 있어서 온천욕 후에 오는 갈증을 푸는 데는 최고다.
백두산의 화산활동과 관련있는 온천들은 천지 북쪽으로 약 1천㎢ 면적에 1백여개의 온천군(溫泉群)이 있으며 온천물은 밤낮으로 끊임없이 솟아 넘치는데 온도는 각기 다르다.
장백폭포에서 백두산 입구인 이도백하에 이르는 깊은 계곡과 거의 평행하게 남북방향으로 최저 37℃에서 최고 82℃까지 13개 온천들의 분포되어 있다. 이는 이 지역의 지질구조적 약선대 방향과도 잘 일치한다.
13개 온천중에서 7개는 60℃ 이상으로서 고열온천에 속하며 3개는 41℃에서 59℃에 이르는 중열온천에 속하고 나머지 3개는 37℃~38℃인 저열온천에 속한다.
해발고도와 온천수의 온도는 어떤 일정한 관계가 없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온천수는 사계절 내내 수온의 변화없이 한결같이 용출된다.
백두산의 온천물에는 황화수소 칼슘 마그네슘 중탄산염이 함유되어 비누물 이상으로 미끄럽고 부드럽다. 특히 피부병 위장병 관절염과 풍습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이 온천들의 생성은 백두산 천지에서 아직도 약 3~5㎞ 밑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되는 마그마 쳄버(房)와 같은 열원(熱源)으로부터 방출되는 고온의 가스가 지하순환수를 만나서 뜨거워져 약한 지구 껍데기로 올라오는 것이다.
백두산에 비하여 제주도 한라산에 온천이 없는 이유는 백록담 밑에 열을 공급할 수 있는 열원인 마그마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 보도에 의하면 천지 남서쪽에서 73℃의 백두산 온천을 발견했다고 하니, 천지주위에는 역시 온천들이 많은 것으로 추측된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배경인 소천지(일명, 장백호)는 천지에서 북쪽으로 약 3.8㎞의 거리에 있고 (해발1850m) 천지수면보다 약 3백m 낮다. 화산구에 물이 고인 작고 원형호수인 소천지는 원지 적지 등과 더불어 백두산 주(主)화산활동과 관련있는 기생화산구들이다.
백두산 천지의 큰 분출 이후, 이들 기생화산구들을 통해 많은 가스들이 태고의 창공으로 뿜어내졌으리라 생각된다. 소천지의 둘레 길이는 약 2백60m, 면적 5천3백80㎡이며 높은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살아있는 백두산, 13번의 분출
백두산의 화산활동사는 지금부터 1천9백90만년 전부터 13만년 전까지 7번에 걸친 흐름성이 강한 염기성 화산분출로 8백~1천m 두께의 현무암대지 및 고원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61만년 전부터 최근 2백87년 전까지 6번의 점섬이 크고 폭발력이 강한 산성 화산 활동으로 장엄한 백두산을 하늘 높이 솟아 올렸다.
이들의 화산활동은 간헐성이고 어떤 주기성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에 다음번 제14차 분출시기는 예측하기 어렵다. 백두산 천지밑의 높은 해발고도에도 불구하고 온도 높은 온천이 많은 것으로 보아서, 천지 밑에는 열을 공급하는 열원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특히 천지표면은 겨울철에 모두 꽁공 얼어붙지만, 3군데만은 얼지않는다. 여름철에도 천지수면의 온도를 측정해보면 곳에 따라서 온도 차이가 발견되는 것은 천지 밑에도 뜨거운 물이 쉬지 않고 솟아 올라오고 있음을 말한다.
또한 중국 길림성 지진 관측소에 의하면 1973년 4월에 백두산 천지 북쪽 약 20㎞ 지점에서 리히터 지진계로 진도 2.1도의 지진이 발생되었고, 같은 해 6월에도 천지 동측 약 20㎞ 떨어진 곳에 2.5진도를 기록하였다고 했다. 천지를 중심으로 50㎞거리 내외에서 이런 미소지진이 많이 발견된다고 하니 분명히 백두산은 끊임없이 지각의 요동을 겪고 있음을 말한다. 이런 온천과 지진 같은 지질현상들은 백두산이 다음 분출을 위하여 쉬고 있는 휴화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백두산은 신생대 제3기말에서 제4기에 걸쳐서 활발한 화산분출을 이룬 장백산맥의 주봉이다. 백두산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잇는 북동-남서 방향과 그것에 수직인 북서-남동 방향으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분출한 화구의 하나로 대륙연변부 열곡(裂谷) 구조 환경하에 생성된 화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열곡구조이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에는 대규모 탄광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다.
백두산의 화산활동을 정리해보면, 먼저 상부맨틀 암석중에 있는 방사능 붕괴원소가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열에 의하여 암석들이 녹아서 용융물질들이 만들어진다. 이 용융물질들은 압력이 낮은 곳인 지각(地殼) 쪽으로 상승하여 지하 3~5㎞의 마그마 쳄버에 모였다가 자체 압력을 견디다 못하여 열곡같은 깊은 틈새인 약선대를 통하여 용암을 분출시킨다. 이런 화산활동은 사이다병을 흔들었다가 갑자기 마개를 따는 것 같은 현상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된다.
마그마 쳄버의 압력이 줄어들고 용융물질을 뿜어내고 나면, 그 남은 공간을 채우기 위하여 돌연 땅이 용암 단애(断崖) 밑으로 푹 꺼져서 천지 같은 아름다운 화구호가 생기고 그곳에 물이 차면 화구호수가 된다.
갑작스런 화산폭발은 분명히 우리 인간에게 재해가 되기도 하지만, 백두산 주위의 유용자원은 부석과 온천 외에도 자철광과 동광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니, 여기서 우리는 자연의 양면성을 엿볼 수 있다.
역사의 시련과 위기에 부닥칠 때마다 인내와 끈기로 이겨내어 오늘에 이른 우리 민족의 저력은 백두산의 형성사와 잘 비유될 수 있다. 여러번에 걸친 뜨거운 화산분출과 차거운 빙하작용이라는 상반된 격심한 지질작용을 겪으면서도 의연히, 그리고 장엄하게 우리 앞에 선 백두산의 자태는 분명히 우리민족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글 : 홍영국 동력자원 연구소 과학동아 1989년 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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