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우리나라는 역대 최장 기간 장마라는 기록을 세웠다. 국지성 집중호우가 이어지는 극한 날씨로 인해 비 피해도 컸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해시태그(#)도 SNS에서 퍼진다. 장마가 물러난 이후에는 폭염과 가을 태풍이 기다리고 있다. 기상 이변은 더 이상 이변이 아닌 일상이 됐다.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통계적으로 100년에 한 번꼴로 일어날 수 있는 날씨 현상이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기상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러한 ‘이상한 날씨’를 계속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날씨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립기상과학원장을 지낸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는 “이대로 가면 40년 후에는 인류 문명의 붕괴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당장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한국은 최전방에서 기후위기의 타격을 입고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뒤따랐다. 그는 “기후위기는 국가 안보와 민주주의 체제 유지와도 직결되는 일”이라며 “선거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국가의제 제1순위에 두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조 교수를 지난 11일 만났다.
‘이미 저질러진 온난화’로 부르기도
현재 기후변화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지구상에서 빙하가 가장 팽창했던 시기 이후 1만 년에 걸쳐 지구 평균기온이 섭씨 4도 상승해 지금과 같은 기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산업화 이후 인류는 불과 100년만에 1도를 높였다. 자연 스스로 일어나는 변화 속도보다 25배 빠른 거다. 10만 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견뎌낸 생태계 입장에선 처음 보는 속도다. 생태계의 약한 고리부터 하나씩 멸종 위기에 놓이고 있다. 젠가 게임처럼 블록이 하나둘 빠져도 처음에는 유지가 되지만 언젠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사람 체온이 1도 오르면 몸이 안 좋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듯이 지구도 기후변화의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지구는 늘어난 스프링처럼 회복력을 잃게 된다. 현재 기온 상승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류가 지금 상태로 간다면 문명의 붕괴까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으로 10년이 기후위기에 결정적 기간이라는데.
“2018년 인천 송도에서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총회가 열렸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만장일치 합의로 도출한 결론은 지구 평균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는 거였다. 이를 위해 모든 나라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과학자들은 4200억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할 경우 기온 상승폭이 1.5도를 넘게 된다고 계산했다. 그 당시 기준으로 한 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20억t이었으니 10년의 시간이 남은 셈이었다. 이제 7년 반 남았다. 하루아침에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들 순 없다. 지금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문명 자체를 뒤집어엎는 수준으로 변화해야 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당장 눈앞에 놓인 코로나 사태나 경기 침체만큼 체감되지는 않는 것 같다.
“최근 호주에서 발생한 산불과 연이은 가뭄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게 지금의 이산화탄소 농도 때문이 아니라 1980~90년대에 배출한 온실가스의 영향이다. 결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 차이가 있다. ‘이미 저질러진 온난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온실가스는 누적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배출을 중단해도 지구온난화는 당분간 지속된다. 기후위기는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앞서 있었던 5번의 대멸종에서 보듯 지구는 스스로 생명을 없앨 수 있는 과정이 엄청나게 많다. 2도 기온 상승은 그 방아쇠를 당기는 거다. 지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유지하면 2060년경에 2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땐 인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도 지구 스스로 변화를 증폭시키게 된다. 생태계가 무너지고 마트에 가도 음식을 살 수 없게 되면 재난지원금을 뿌리는 게 의미가 없다. 기후위기는 시행착오로 배울 게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 나타나면 그대로 끝장이기 때문이다. 위기가 다가오는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게 명백하다. 온실가스를 저감하면 피할 수 있는 문제다.”
당장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뭔가.
“지난 6월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의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시내에 있는 지상 주차공간 6만 개를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자가용 타고 시내로 들어오지 말라는 거다. 대신 자전거 도로를 대폭 늘리기로 했다. 파리 시민이 그런 시장을 뽑았다. 미국 뉴욕시에서도 지난해 강력한 기후대응법이 통과됐다. 시내 대형 빌딩들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전면이 유리로 된 건물 신축을 규제하는 내용이다. 세상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가 정치다. 빈부격차만 키우는 ‘경제성장’을 외치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투표해야 한다. 물론 그러려면 시민들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려운데.
“유럽의 선진국들은 보수든 진보든 정파성을 떠나 국가의제 제1순위가 기후위기 대응이다. 우리나라도 기후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올리는 정치 지도자가 나올 때가 됐다.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나올 거라고 본다. 갈 수밖에 없는 길이고 없어질 위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부족하긴 해도 최근 1~2년 사이 기후위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많이 변했다. 코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절박함을 느끼게 될 거다. 다만 일찍 깨닫게 될수록 감당해야 할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에 그 시기가 빨리 와야 한다. 때를 놓치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위기를 맞게 된다. 대공황이 오고 당장 생존의 문제가 달리면 민주적 합의를 기대할 수 없다. 무질서와 불안정 속에서 권위주의적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게 된다. 히틀러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나.”
기후위기가 국가 체제에도 위협이 된다는 얘기인가.
“시리아 내전을 촉발시킨 건 러시아 밀 생산지역의 가뭄으로 인한 밀가루 가격 급등이었다. 배가 고프면 폭동이 일어난다. 국가가 유지되는 데 기본이 되는 게 식량·물·에너지다. 견디지 못해 국경을 넘는 시리아 난민의 문제는 유럽에서 국가 안보의 문제다. 시리아 난민은 약 400만 명이다. 그런데 지구평균기온이 지금보다 0.5도 오르면 1억 명에 달하는 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아시아에서 난민이 대거 생겨났을 때 우리나라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나. 거의 모든 자원을 외국에서 끌어와 쓰고 있는 한국이 첫 번째 위기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굉장히 치열하고 심각하게 생존을 따져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 우리나라는 위기를 위기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선진국 프레임 벗어나 능동적 대응 해야
정부의 그린 뉴딜 정책은 어떻게 보나.
“선진국들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수동적으로 따라가고 있는 것 같다. 남을 뒤따라갈 게 아니라 리더십을 발휘해서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에너지 문제도 정파적으로 볼 게 아니다. 경제성으로 따져도 원자력 발전은 이미 시장에서 수명이 끝났다.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쪽에는 더 이상 투자와 연구·개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반면, 재생 에너지 쪽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 가격이 85% 떨어졌다. 앞으로 10년 내에 50%가 더 떨어진다고 한다. 자본과 기술이 집약돼 해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전 세계가 에너지 전환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데 석탄과 원자력을 쥐고 있겠다는 건 좌초자산을 떠안는 거다. 산업 구조를 바꿔야 한다. 애플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제로(0)로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유럽연합(EU)은 수입품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은혜 기자 choi.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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