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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향 난향/우은숙 돌꼇잠 덜 깬 몸에 살며시 흘러든다 긴 궤적 그리며 깊은 품에 들어와 푸른빛 잠을 깨우는 싱싱하고 풋풋한 숨 젖은 음악 틀어놓고 고요 속을 흐르던 너 밑줄 치는 습관처럼 총총한 별 만들어 엉켜진 내 생각들을 환하게 빗겨주는구나
시간의 눈금 시간의 눈금/우은숙 절반쯤 걸어왔을 굳은살의 꽃밭에서 수많은 마침표를 꽃잎처럼 등에 달고 맨발로 눈금을 새긴다. 또 한 줄이 보태진다 한 금 한 금 짚어가며 읽어보는 갈피마다 아쉬움의 덧칠 흔적 숨이 헉헉 막히지만 백비(白碑)의 내일이 있다. 짜릿하게 꽃물 드는
변산반도 변산반도/우은숙 하늘 닦던 햇살이 수평선을 핥아주고 자막처럼 달려와 하얗게 들뜬 속살로 내 안을 확, 펼쳤다가 이내 접는 변산 반도
빛바랜 사진 빛바랜 사진/우은숙 내소사의 색 바랜 꽃 문살을 보았나 촉수 낮은 눈길을 가슴에 끌어안고 시간의 먼 가슴을 여는 무채색의 숨소리 자글자글 재잘재잘 자분대는 소리들 그 꽃들의 함성이 풍경으로 달려가 저 멀리 마른 바다의 발자국을 불러온다 황급한 발자국 새벽 밟고 달려와 내게 내민 빛바랜 문..
찔레꽃 그늘 찔레꽃 그늘/우은숙 찔레 덤불 사이사이 바람이 지나가자 무리지어 흰 꽃을 터트린 찔레꽃이 반 접힌 오후의 액자에 그림처럼 걸린다 발긋발긋 터지는 순간마다 꽃망울은 한낮의 거친 볼에 그늘을 키운다 그늘은 가난한 땅에서 더더욱 넓어진다 꽃그늘 사이로 피어난 흰 발자국 하나 선명한 판화로 ..
저녁 해 저녁 해 /우은숙 찬란한 치마폭은 유혹을 위한 마술 눈도 입도 다 가리고 맥박만을 남겨 논 채 숨어서 또 다른 해를 뜨겁게 익힌다
실족(失足) 실족(失足) /우은숙 채 눈도 뜨지 못한 성급한 어린 까치, 햇빛 쫓아 나오다 어, 어, 어, 기우뚱, 탁 ! 찰나에 금이 간 지구 사랑니가 시리다
13월의 수첩 13월의 수첩 /우은숙 1. 다른 세상 내 이마를 밟고 가는 아침저녁 거두고 가끔씩 지구밖에 앉아 휴식을 구한다 파릇한 낯설음의 떨림 끌어안는 찡한 새벽 2. 세상보다 무거운 달력 한 장 지는 해 끌어내려 애기 하나 더 낳아볼까 펄럭이는 달력 한 장 세상보다 무거워 이름표 달지 못한 채 바람소리만 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