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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나의이야기

‘토정의 비결’을 보셨나요

토정의 비결’을 보셨나요

 


 전남 영암호 일출

 

불황이 깊어질수록 호황을 누리는 곳이 있다. 바로 토정비결이나 운세를 보는 점(店)집이다. 점술은 특히, 서민들의 애환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상담 창구 역할을 한다. 불황과 청년실업 등이 겹치면서 자신과 가족의 불안한 미래를 점쳐 보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점 보러 오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미래’다.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취직은 언제쯤 할 수 있는지?”, “돈을 잘 벌 수 있는지?”, “결혼을 언제쯤 할 수 있는지?” 등등 대부분의 질문이 현실적이고 급박한 것들이다.


점술업이 연간 4조원 규모의 시장을 가진 거대 비즈니스로 발돋움한 지금, 점집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음산한 뒷골목의 한옥 판잣집에 내걸렸던 미아리 ‘철학관’은 쇠퇴하고 첨단 컴퓨터 시스템과 현대적 점술 도구를 내세운 ‘사주카페’, ‘역술 백화점’ 이 지존 자리를 꿰찼다.


토정비결을 보는 것은 비단 구세대의 낡은 미신은 아니다. 현실에 지친 디지털 세대들에게도 매력적인 유희의 도구다. 운세 좋다는 말에 원기를 회복하고, 혹 나쁘다는 일은 삼가며, 삶의 활력소를 얻는 지혜인 것이다. 어쩌면 500년 전 토정 이지암이 도탄에 빠졌던 백성들에게 주고자 했던 구원의 메시지였는지 모른다.


토정의 깊은 마음을 보자


해마다 정초가 되면 사람들을 『토정비결』앞에 모여들게 하는 토정 이지함, 그는 우리에게 『토정비결』의 저자, 기인, 점술가로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토정은 우리나라 최초로 자본주의 경제를 시도한 경제학자이자 수학자였고, 지리학과 천문학을 바탕으로 한 농업 과학자였다. 그리고 토굴 속에 살며 빈민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힘쓴 빈민운동가이기도 했다. 토정은 고려 말 권력의 핵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자기 자신은 철저하게 야인 생활을 하면서 내우외환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농민을 구제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처음으로 유통 개념을 생각해 낸 것도 토정이다. 그는 한 지역에서 많이 나는 농산물은 다른 지역으로 유통시키고, 그 지역에서 모자라는 것은 또 다른 지역에서 수입해 들이는 것이었다. 이 경제 이론은 현대 경제학으로 보면 당연하고도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지만, 토정이 살던 조선 중기에는 시대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토정은 농경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며 인간 개개인의 운명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은 왜 부모를 일찍 잃고, 어떤 사람은 왜 병으로 평생 고생하는가, 어떤 사람은 왜 하는 일마다 잘 풀리는데 어떤 사람은 왜 하는 일마다 방해를 받아 막히기만 하는가.


토정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현실 속으로 뛰어들어 수십 년 동안 인생사를 집대성하였다. 이것이 인간 개개인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운명 지침서『토정비결』인 것이다.


『토정비결』은 요행이나 횡재를 가르치진 않는다. 안 될 때에는 준비를 철저히 하며 때를 기다리고, 잘 될 때에는 보름달도 언젠가는 기우는 이치를 깨달아 겸허하게 살라고 충고하면서 인내와 중용과 슬기를 가르치고 있다. 혼돈기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토정 이지함이 오늘의 어려운 농업 현실 속에 우리에게 또 하나의 치침을 주는 지도 모른다.


토양 속에도 비결은 있다


도대체 농업은 왜 어려운 것일까. 농업은 예측 가능한 상황 전개가 어렵기 때문이다. 매년 춤추는 농산물의 수확량과 가격 예측을 점(店)집에서 예단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농업은 점집을 다녀온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불안정하고 변화 많은 농업분야에서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그것은 최고의 명품을 만들기 위한 비결에서 찾아야 한다. 농산물은 특별히 다양한 접근을 필요로 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농업생명이란 복합적인 결과라 여러 요인을 종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명품을 만들기 어렵다.


진정 토정 이지함의 비결에서 배우는 것은 농업의 과학화이다. 어차피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점이라는 것도 통계과학에 의한 우연을 유추해 내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이룩한 과학을 접근시켜 예측 가능한 농업을 만들고 자신의 의지를 믿고 소처럼 우직하게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갈 일이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내분으로 고통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토정 이지함, 농업의 새로운 수레바퀴를 돌리기 위해 모여 있는 우리들, 우리는 “크고, 깊고, 느린 농업”을 하기 위해 명품을 만들 흙의 점괘을 내다 볼 수 있는 세밀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토정의 진면목에 새겨진 비결을 찾아내는 일이다.               

                                                                        

『한국농업대학보』  특용작물학과 교수 장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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