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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건강이야기

몸속 유해물질 줄이기 바람

몸속 유해물질 줄이기 바람


3일 성의경씨가 아들 승범군과 함께 베이킹소다·식초를 넣어서 만든 천연 세제를 용기에 담고 있다.
최근 성씨처럼 가능한 한 화학첨가물을 멀리하고 신체에 가해지는 여러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노케미족'이 늘어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육아휴직 중인 교사 성의경(33)씨는 만 1세, 3세인 두 아들을 키우면서 노케미족으로 변신했다. 노케미족(no-chemi)이란 세제·치약 등 생필품이나 식품을 선택할 때 화학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고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성씨가 처음부터 노케미족을 자청한 것은 아니었다. 둘째 아이를 낳을 때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면서 또래 엄마들과 유익한 생활 정보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레 ‘보디버든’(Body burden·신체에 가해지는 여러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대해 공부하게 됐다고 한다. 성씨의 살림 철칙은 “10년 뒤 아이들의 건강까지도 생각하자”는 것이다. 성씨는 우선 설거지와 세탁기, 화장실 청소 세제를 모두 통일시켰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4000원에 구매한 EM(Effective Micro-organisms·유용미생물)활성액을 희석해 살림에 활용한 덕분이다. EM활성액은 인체에 유용한 미생물들을 조합해 배양한 물질이다. 화학적 성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고 환경 오염을 유발하지 않는 천연 세제로 알려져 있다.

최근 성씨처럼 일상생활에서 유해 화학물질 등을 최소화하고 친환경적인 물질을 사용하는 노케미족이 늘어나고 있다. 유통업체 관련 매출 증가가 대표적 증거다. 쇼핑몰 11번가의 경우 친환경·천연 주방 세제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7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자연 가습기, 공기정화 식물, 천 기저귀도 40~50% 판매량이 늘었다. 화학 세제 및 세정제 대용으로 각광받고 있는 식초와 베이킹소다 매출도 역시 증가했다.

‘노푸족’이란 신조어도 생겨났다. ‘노(no) 샴푸(shampoo)’의 준말로 화학물질이 들어간 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베이킹소다나 식초를 이용해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다. 대신 표백제와 세탁 세제, 탈취제 등 화학 성분이 주성분인 생활용품의 판매량은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노케미족이 대거 늘어난 데는 화학물질에 대해 두려움, 즉 ‘케미포비아(chemi-phobia)’가 자리 잡고 있다. 1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지난 2월 미국 기저귀 브랜드 팸퍼스에서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된 것이 직접 계기가 됐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화장품·위생용품·세제 등으로 인체에 노출되는 환경호르몬(내분비계 교란 물질)이 비만·당뇨병·성 기능 장애뿐 아니라 신경 기능 장애나 더 나아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이다. 특히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자는 1996년에 처음 발생했지만 무려 15년여 동안 제대로 된 감시 체계가 전무해 참사로 이어졌다. 이 같은 위기감은 소비자들이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소비자들이 친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케미족은 단순히 라벨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보디버든’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은 성분과 안전성을 전문가 못지않게 따진다. 어떤 물질이 위험한지, 왜 문제가 되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익힌다. 베이킹소다·과탄산소다·구연산 등을 활용해 직접 천연 세제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세 가지 물질은 노케미족 사이에서 ‘마법의 가루’로 불리면서 얼룩이나 물때를 제거하는 용도로 널리 활용된다. 알레르기나 아토피 환자들도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저온숙성 비누를 만드는 것도 인기다.

성씨는 “세제든 비누든 직접 만드는 일이 어렵고 번거로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쉽고 간단한 일이라서 계속 만들고 있다”며 “요즘 제일 관심이 많이 가는 것은 저온에서 숙성시켜 만든 ‘CP(Cold Process)비누’”라고 말했다.

팸퍼스 기저귀 논란이 일었을 때 한국P&G가 다이옥신 허용 기준치를 10년 전 성인 기준으로 적용했다는 사실도 파워블로거와 소비자들 덕분에 처음 밝혀지기도 했다. 지난해 CMIT(메칠클로로이소치아졸리논)·MIT(메칠이소치아졸리논) 등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함유된 치약이 문제가 됐을 때 정부는 “양치 후 입안을 물로 씻어내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밝혔지만 소비자들은 CMIT·MIT가 들어간 치약을 외면했다.

직접 천연 재료로 화학제품을 만들 시간이 없는 소비자들은 친환경 및 유기농 브랜드 제품들을 선호한다. 노케미족은 식품을 고를 때도 원료 100%, 무첨가 등 ‘클린 라벨’을 고집한다. 성분이 표시된 라벨을 꼼꼼히 살펴보는데 친환경 농산물, 유기농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보디버든 줄이기 체험’도 유행이다. 약 2주간의 체험 기간 동안에는 화학물질과 거리를 두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파라벤·트라이클로산 등 화학물질이 들어간 생필품 피하기, 유기농 농산물을 섭취하고 인산염·캐러멜 색소 등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식품 피하기, 개인 컵을 들고 다니고 비스페놀A 등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 영수증은 받지 않기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 보디버든 줄이기 체험은 유기농 제품을 취급하는 업체들이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보디버든을 줄이려는 노력은 제약업계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약물이 치료가 필요한 부위에만 작용하게 해 치료 효과를 증대시키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목적으로 만든 약물을 ‘전구약물’(postdrug)이라고 한다. 전구약물은 인체에 투입된 뒤 대사 과정을 거치면서 효과가 나타나는 약물로 치료 부위까지 약물이 분해되지 않고 이동해 약물의 전신 노출을 최소화한다.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최소한의 용량만 필요한 부위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가 최근 개발한 만성 B형 간염 치료제 타프(TAF)는 대표적인 전구약물이다. 약물 대부분이 표적세포 내에서 활성물질로 바뀌는 덕분에 약물의 전신 노출이 적다. 기존 치료제보다 용량은 10분의 1로 줄였지만 효과는 동일하다. B형 간염 같은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약을 한 번 복용하면 장기간 복용한다는 점에서 전구약물은 국내외 제약사들이 최근 가장 많이 투자하는 분야기도 하다.


일반인이라면 각종 생필품 뒷면에 고지된 성분표를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어떤 화학물질이 위험하고 어떤 물질이 안전한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노케미족’들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가장 피해야 할 물질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폴리에틸렌글라이콜·파라벤·트라이클로산·피레스로이드 등이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은 가습기 살균제 사고의 원인이 된 성분이다. 그대로 들이마시면 호흡곤란과 함께 폐가 손상될 수 있다. 표백제와 섬유유연제에 첨가돼 있다. 폴리에틸렌글라이콜은 샴푸·세제 등에 첨가된 성분으로 신체 내에 오랜 기간 축적되면 신장과 간 세포가 괴사할 수 있다.

시중 대부분의 치약에 들어가는 파라벤은 최근 그 위험성이 여러 차례 강조됐다. 세정 제품은 물론 방부제 목적으로 화장품에 들어가기도 한다. 과도하게 사용하면 각종 암 발생률을 높인다. 피부 노화를 촉진하는 부작용도 있다.

항균 제품에 많이 쓰이는 트라이클로산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암을 유발하기도 한다. 가정용 살충제에 들어가는 피레스로이드는 성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임신부나 영유아에게 오래 노출되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위험이 커진다.

최근 ‘친환경 화장품’들은 자진해서 EWG 등급을 표시하기도 한다. EWG 등급은 미국의 비영리 환경단체에서 화장품 성분의 안전성을 평가한 것으로 등급이 낮을수록 안전한 성분만을 사용한 것이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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