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 뵈리스호펜(Bad Worishofen)
바트 뵈리스호펜에는 치료와 요양을 위해 하루에 3,000~4,000명, 연 90만 명 이상이 방문하고 하루 이상 숙박하는 사람도 11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원래 목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골마을이었는데 신부이자 의사인 세바스찬 크나이프(F.S. Kneipp, 1821~1897)가 자연치료 요법을 선보이면서 독일 최고의 치유도시로 발전했다. '크나이프 요법'이라 불리는 이 치료법은 자연 속에서 냉수욕과 냉수마찰 등을 이용해 심신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독일에는 300개 정도의 치유 및 요양 기지가 있으며 치유와 요양 분야 종사자만 7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치유산업이 활성화되어 있다.
치유산업의 이익은 주민의 수익
이 도시의 치유시설 대부분은 정부 소유지만 주민들도 주주로 참여하고 있어 치유산업의 이익은 주민들 수입과 직결되고 있다. 바트 뵈리스호펜은 방문객과 치유업무와 관련이 있는 지역주민들로부터 휴양세를 거둬 치유시설 확충 및 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 수입이 연 250만유로(39억 원) 정도라고 한다. 바트 뵈리스호펜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처럼 잘 조성되어 이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심신이 편안해진다. 도시 외곽 숲에는 전체 길이가 200km에 달하는 노르딕워킹코스가 있는데 의사가 난이도를 고려해 코스를 구분해놓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도 인증 받은 6개 구간은 30㎞ 정도이다. 도심 내 숲길인 크나이프 숲길도 인기 코스다. 도심을 걷는 8.4km 길이의 숲길에서 걷거나 자전거, 또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마을 외곽을 걷다 보니 소를 키우는 건물 창틀에 윈도우 꽃박스가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 외양간에도 꽃을 걸어둔 것이다. 여름에도 비 오는 날에는 추워 가을잠바를 꺼내 입을 정도로 선선한 독일 기후와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 마을을 꽃과 숲과 한방치유를 결합한 국제적인 치유마을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자료 출처: chosun.com,2015.04.20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Sebastian Kneipp는 누구인가?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신부님은 1821년 5월17일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농장 일을 하면서도 신부가 되고자 하는 꿈을 버리지 않고 23세에 짐나지움(인문계 중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27세에 신학공부를 시작하였지만 불행히도 결핵에 걸려 5년 동안 공부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 시기에 의사였던 요한 지그문트 한 Johann Siegemund Han이 1738년에 저술한 물치료에 대한 책을 만나게 됩니다. 신부님은 물의 치유력을 자신에게 적용해보기로 결심하고 1849년에 겨울 내내 다뉴브강에 들어가고 나오자마자 물을 닦지 않고 옷을 입고 뛰는 냉. 온욕 치유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병세는 더 나빠지지 않았고 2년 동안 계속하자 건강 상태가 좋아짐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신학대학시절 기숙사 앞에서 조리로 찬물과 더운물을 뿌려 친구들을 치료하여 물박사 Water Doctor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1855년 34세에 성당신부로 부임하여 영성과 물치료, 수도원의 농사방법개량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1881년 봐드뵈리스호펜의 정식 주임신부가 되었고 물과 약초사용으로 환자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했습니다. 크나이프 신부님은 경제 상태와 상관없이 모든 환자에게 어떠한 차별도 두지 않았습니다. 치밀한 관찰결과와 많은 임상경험을 통해 진단학과 자연치료학의 광대한 지식을 획득했습니다. 1886년 “나의 물치료 Meine Wasserkur(1,2권)”가 출간되었고 한 달에 한번 사람의 상태, 부위, 증상에 따른 수치료 적용에 대한 강연회를 열었는데 그 때마다 전 세계인이 모여들었고 그 때부터 봐드뵈리스호펜은 휴양도시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후 1889년 “ 삶은 이러셔야 합니다. So sollt ihr leben”이 출간되었고 소천하시기 15년 전부터는 후계자를 적극 양성하셨으며 특정부위 치유 120개의 방법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의사와 여러사람들에게 고발당해 법원 출입이 잦아지게 되자 의사인 프라츠 클라인슈로트 Dr. Franz Kleinschrod와 같이 연구하여 Kneipp 치료를 의학적으로 증명하였습니다. 1897년 76세에 ‘내가 죽거든 나를 해부해서 교육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소천하셨습니다.
크나이프는 어떻게 발전하였는가?
건강을 위한 생활방식의 중요성은 여러 시기의 건강서에서 발견됩니다. 로마 철학자 갈레노스 (Galen,129~199)와 아랍의 스콜라철학자 아비센나(Avicenna,980~1037)를 거쳐 크나이프 신부와 버쳐-베너(Bircher-Benner)박사에 이르기까지 유사한 형태로 세대를 거치면서 계속 발전해왔습니다.
크나이프 신부의 서거 24년 후인 1921년에 그와 공동 작업을 수행한 최초 의사 중 한 명인 프라츠 클라인슈로트 교수가 크나이프 건강사상의 모든 요소들을 자연과학원칙에 따라 세 개의 기둥으로 세워진 건물로 비유하며 재배열했습니다.
크나이프 건강사상은 3개의 거대한 기둥으로 받쳐져 있다. 첫째, 법칙과 목적에 맞는 신체조직 활용의 원칙, 노동의 원칙 그리고 훈련의 원칙을 통한 활력강화, 둘째, 신체의 올바른 영양제공, 세 번째는 신체에 대한 정확한 정신적, 영적인 영향력이다. (Franz Kleinschrod)
1938년 스위스 의사 버쳐-베너(1867~1939)는 “생의 질서법”이란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습니다.
방법은 단순하다. 당신의 삶과 섭생을 자연의 생애법칙에 따라 질서있게 배치하라. 당신의 신체에 피부생애와 조화로운 운동을 부여하라. 당신의 폐에 신선한 공기를 주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정신력이 당신의 영혼을 지배하게 하라. 이것이 생의 질서의 고귀한 길이다.(Bircher-Benner)
1957년 크나이프 의사 J.H. Kaiser는 크나이프 이론의 3가지 기둥에 2개의 기둥을 추가하여 오늘날 의학적인 치료법의 5개의 요소가 되었습니다.
5개의 기둥의 발전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1981년 Kaiser는 5개의 기둥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그는 “크나이프치료의 정확한 시행”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크나이프 섭생원칙은 역사와 행위 속에서 육체-영혼의 관계를 고려하여 최적의 건강과 활동력 및 삶의 기쁨을 얻기 위해 육체-영혼 분야에서 자연의 생명질서를 재건하고자 한다.”(Kaiser) 시대상을 반영하여 심신상관의학이 의학분야에서 인정을 받았고 Kaiser는 5개 기둥과 함께 크나이프 의료기구를 보완하고 현대화 하였습니다.
출처:kneippkorea.co.kr/(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원효자길 20 전화: 사무국장(김대진) 010-8921-6000)-우리나라에도 훌륭한 협회가 있습니다.
크나이프요법 발상지인 바트 뵈리스호펜(Bad Worishofen)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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