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무늬를 읽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우은숙 우리 집 창고엔 어둠을 덮고 누운 자잘한 것들이 살 부비며 살고 있다 모종삽, 낡은 소쿠리, 녹슨 호미, 괭이까지 그뿐인가 봉숭아, 맨드라미, 국화꽃 무, 배추, 오이, 호박, 붉은 홍화 씨앗까지 모두 다 어둠으로만 제 몸을 감싸고 있다 천지간 잔멀미로 울렁이는 전갈 받았나 서로의 몸 흔들며 하나둘 깨어난다 작은 발 꼼지락거리며 수런대는 저 생명들 기억보다 몸이 먼저 알아낸 빠른 감각 겨우내 끌고 온 침묵의 흙 앞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봄, 봄인 것이다 위 시를 찬찬히 세 번 읽고 나서 눈을 감아 본다. 나는 한 마리 거미가 되어 총총, 고요가 삼키는 은빛 물길을 따라 유년의 수채화를 그린다. 마당 넓은 집 한 채가 보이고, 수건을 두른 내 어머니일 것 같은 아낙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