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우시인시선 (83) 썸네일형 리스트형 물렁한 힘 물렁한 힘 우은숙 마른 바람 흔들리는 저물녘 강변에 제비꽃 몇 송이 여린 몸이 휘청한다 흐름의 습관을 잠시 거꾸로 접는 물결 순하게 몸 낮춘다 저음의 악기 되어 저녁별이 눈 뜨기 전 재빨리 뿌리에 닿아 땅을 꽉 움켜잡게 하는 물렁하고 둥근 저 힘! 어느 날, 그 떨림 어느 날, 그 떨림 우은숙 숨겨둔 암호처럼 시퍼렇게 날선 시간 온통 못자국만 가득한 하늘 쳐다보다 다 접고, 미술관 한켠에 발걸음을 멈춘다 애써 참던 울음보 터질 듯한 바로 그때 내 눈을 가득채운 섬광 같은 그림 한 점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꽃잎 되어 날아든다 떨리는 눈꺼풀 거둬 햇빛.. 자모字母 자모字母 우 은 숙 은빛 같은 볕 아래 뿌려지는 홑잎들 하나하나 말갛게 헹궈지지 않은 슬픔 가을날 첫줄에 쓴다 서늘한 그리움이라고 내게로 와 이카로스의 날개가 되어버린 후조候鳥의 찢긴 날개, 비상할 수 없는 음성 켜켜이 접었던 아침 부화가 시작된다 슬그머니 슬그머니 우은숙 이런 게 보통사람 사는 모습 아닐까 지하철에 희고 부신 아가씨의 다리를 중년의 신사가 슬쩍, 안 본 듯 쳐다보는 언뜻언뜻 보이는 목련송이 같은 가슴 한 손에 고리잡고 한 손에 신문 쥔 남자 여자의 가슴팍을 살짝, 넘겨다 보고 마는 그러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확! 하고 뻥튀기 하듯.. 저녁의 질문 저녁의 질문 우은숙 다 늦은 저녁 물고 새 한 마리 날아가자 골목마다 헤싱헤싱 외등에 불 켜지고 사람들 하루를 접어 달력 속에 꽂는다 소박한 저녁이 준비된 작은 식탁 창문에 떨어지는 어둠소리 리듬 삼아 식구들 하루치 이야기, 별들 틈에 반짝인다 빛을 위해 마련한 어둠의 접시처럼 아침을 위하.. 바람의 행보 바람의 행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온몸의 광기는 모든 것 흔들어야 직성 풀리는 그것은 성급히 상처 감추듯 순식간에 휘도는 갈대들 사이사이 가쁜 숨 몰아쉬며 비명까지 끌어들여 뒤엉킨 눈동자들 부푼 몸 살갗 뚫고 와 내 몸에 미열 인다 하늘 잠깐, 흔들렸다 하늘 잠깐, 흔들렸다 이제 막 걸음걸이 시작한 아기가 유채꽃 사이로 아장아장 걸어온다 한순간 어찌할 새도 없이 머리 콩! 박는다 노란 꽃무더기 흔들, 그곳에 엎어진다 재빨리 팔을 뻗어 아기를 받쳐주는 꽃잎들 놀란 몸짓에 하늘 잠깐, 흔들렸다 가을 오는 길목에서 가을 오는 길목에서 여름내 끈질기게 쫓아오던 아우성 그윽한 햇빛 속에 양손을 벌릴 때면 오너라 너를 반기니 안개처럼 스며라 초록이 입성하던 그 자리에 앉는다 엽록소 빠져 나가 환한 불빛 받아 오니 이제야 높이 뜬 하늘 가슴으로 안아라 == 시작 노트: 우은숙 == 여름내 우리를 끈질기게 쫓아왔던.. 이전 1 ··· 4 5 6 7 8 9 10 11 다음